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또다시 “한국이 100억 달러(약 13조7000억원)는 내야 한다”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내각회의에서 “거의 모든 국가가 우리에게 관세를 부과해 왔다”고 말한 뒤 갑자기 “우리는 한국을 재건했고 그곳에 (미군이) 머물러 있다. 그런데 한국은 방위비를 아주 적게 낸다”고 주장했다. 100억 달러는 올해 방위비 분담금 1조4028억원의 9배에 달한다. 한국에 관세 서한을 보낸 다음날 방위비 문제를 꺼냈다는 건 그의 심중을 엿보게 한다. 3주간의 통상 협상에서 방위비 문제를 미국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발언은 사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다. 그는 “(1기 행정부 당시) 한국에 ‘1년에 100억 달러를 내야 한다고 말하자 그들(한국)은 난리가 났다. 결국 30억 달러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트럼프가 요구한 인상액은 50억 달러였고 그의 임기 중 방위비 분담금은 1조원을 갓 넘은 10억 달러 수준이었다. 현재 약 2만8000명인 주한미군 규모를 4만5000명이라고 거듭 잘못 언급했다. 이런 팩트 오류는 단순한 착오가 아닌, 1기 때부터 지난해 대선 기간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복돼 왔다. 동맹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기보다는 자국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의 5% 수준으로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더해 우리에겐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상향까지 사실상 강권 중이다. 소고기 시장 개방, 빅테크 규제 완화, 조선업 및 알래스카 에너지 개발 협력 등 미국이 제시한 경제 분야 청구서만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이를 한꺼번에 제시한 뒤 한국 정부의 반응에 따라 관세를 결정하겠다는 게 미 행정부의 속셈이다. 동맹에 대한 대단히 무례한 행보임엔 분명하다.
그럼에도 한시가 급한 만큼 최적의 협상 카드를 찾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다. 북·러 밀착에 따른 북한 도발의 위험성,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기 고조 현실에 비춰 국방비와 방위비 분담금의 적정 수준 인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를 인정하되 반대급부, 예를 들어 핵잠재력을 키울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요구하는 식의 접근도 필요하다. 미국의 조선업 경쟁력 강화와 안보 문제의 연계도 방위비 압박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의 통상·안보가 미국에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듭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 치밀하게 진행돼야 할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