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성령은 기차의 두 레일과 같다. 레일 하나가 없으면 기차가 탈선되듯 이 둘은 선택이 아닌 균형의 문제다. 이제 한국교회는 성경과 성령이란 두 레일 위에 균형 있게 서야 한다.”
신간 ‘성령을 받으라’(규장)를 펴낸 류영모(71) 한소망교회 원로목사의 성령에 관한 지론이다. 이른바 ‘두 레일론’이다. “성령 체험도 성경의 검증이 없으면 위험해지고, 성경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해석·선포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장로회신학대를 거쳐 같은 대학 신학대학원서 석사 학위를, 미국 리젠트대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류 목사는 성경을 중시하는 뼛속까지 ‘개혁신학자’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장과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등을 지낸 한국교회 원로이기도 하다. 1990년부터 34년간 목회한 한소망교회서 지난해 원로목사로 추대된 그는 왜 은퇴 후 첫 책의 주제로 ‘성령’을 택했을까. 류 목사를 지난 8일 경기도 고양의 나부터 포럼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목회 50주년에 펴낸 50번째 저서다. 성령을 다룬 이유는.
“그간 신학교에서 성경연구 방법론을 가르치는 성경 연구 전문가로 살아왔다. 성령론을 학교에서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서재에 관련 책만 100권이 넘을 정도로 관심을 두고 꾸준히 연구해왔다.
성령론은 50년의 목회 여정 중 가장 깊이 다루고자 했던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목회 현장에서 성령 임재를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이를 성경적·신학적으로 조명할 필요를 느꼈다. 책은 이 과정에서 성경과 성령이 조화되는 성경적 성령론을 알기 쉽게 정리한 나름의 결과물이다. 이때 얻은 결론이 두 레일론, 즉 성경적이고 통전적(holistic)인 성령론이다.”
-통전적 성령론이란 무엇인가.
“제 신학 연구의 바탕은 통전적 신학이다. 이를 ‘중심에 서는 신학’이라고도 한다. 한쪽에서 단편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중심, 즉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나라 가치로 전체를 아우르는 신학관이다. 신학은 장구한 세월 가운데 논의되고 검증·평가된 결과이기에 한두 사람의 사상이나 신학으로 평가할 수 없다.
나는 성령론에도 중심에 서는 신학이 필요하다고 본다. 성경과 성령, 복음주의와 은사주의 양측의 소중한 것을 망라하는 동시에 양측의 단점을 성경에 근거해 지적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렇지만 정치·경제·교육뿐 아니라 신학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기에 기실 이런 신학관은 양측에서 비판을 받기 쉽다.”
-양비론으로 오해받을 수 있겠다.
“통전적 성령론에서 말하는 중심은 양비론이나 중용과는 거리가 멀다. 이때 중심은 오직 예수와 하나님 나라, 성경이다. 이 중심을 붙들고 새 시대의 흐름을 품으며 ‘개혁된 교회는 늘 개혁해야 한다’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양편에서 찬사도 보내지만 때론 거센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이 길을 걷는 건 예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보수적이면서도 진보적이었고, 개혁적이었다.”
-성령에 관한 인식차로 갈등을 빚은 사례가 있나.
“그간 복음주의와 은사주의는 ‘성령 세례’에 관해 이견을 보였다. 전자는 성령 세례를 구원의 확신으로, 후자는 방언이나 치유 등 은사로 이해했다. ‘방언 못 하면 성령을 부인하는 사람’이란 오해가 여기서 나왔다.
이 양 진영에 다리를 놓는 게 통전적 성령론이다. 요즘엔 은사주의 진영도 방언을 성령 세례의 유일한 표징으로 보지 않으며, 복음주의자도 은사에 대해 열린 시각을 보인다. 교회의 주인이자 역사의 왕이 성령이란 걸 서로 인식한다면 갈등은 사라질 수 있다. 이 책이 그 길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나부터 포럼으로 한국교회와 사회에 메시지도 내고 있다.
“목회 50년 동안 한국교회의 성장과 절정, 위기까지 모두 경험했다. 탈종교 시대 속 다음세대에게 신뢰를 잃은 한국교회를 물려줄 순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에게 여전히 한국교회는 희망이란 메시지를 주고자 은퇴 이후에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교회보다 반걸음쯤 앞서 시대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포럼 역할이다. 올봄에는 한국교회 선교 140주년을 기념해 초기 선교 정신과 한국교회 미래를 논했다. 오는 10월 20일엔 인공지능(AI) 시대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다룬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