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장충교회(장재찬 목사)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영감을 토대로 건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충교회를 설계한 김학철(79) 건축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인 건축가 아이엠 페이(I.M.Pei)의 회사에서 8년간 근무했다. 아이엠 페이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모든 건축학도의 꿈이라고 한다.
그는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프랫대학교와 대학원을 나왔다.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으며 아이엠 페이에 있을 때 미국 뉴욕 IBM 본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미국 뉴욕 제이콥 컨벤션센터 프로젝트에 콘셉트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김 건축가는 지금은 목회자다. 뉴욕에서 일할 때 하나님이 천국을 보여주셨고 그 의미를 알고자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개신교단 기독교선교연맹(C&MA)의 신학교에 들어갔다. 목회자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태국의 한 선교사가 도와 달라고 해 C&MA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태국 선교사로 활동했다. 한동대 교수로 지원, 채용됐다. 과목은 건축설계지만 주로 선교사 훈련을 담당했다.
그는 현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인근 민간인 거주 마을에서 7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먹거리선교회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 건축가를 지난달 31일 장충교회에서 만났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영감을 담다
장충교회는 김 건축가가 2004년 한동대 교수 시절 설계했다. 교회의 디자인 콘셉트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영향을 받았다. 김 건축가는 교수 안식년 때 바르셀로나에 가서 가우디 연구와 보전의 세계적인 권위자 바세고다 노넬과 1년간 교류했다. 장충교회의 아치형이 가우디의 파라볼라(포물선)에서 따왔다.
이 파라볼라는 단순한 수학적 개념의 포물선이 아니라 건축 구조의 미적, 공학적 원리를 말한다. 가우디는 자연을 건축의 스승이라 여기고 건축의 개념을 자연에서 배우고자 했으며 자연스럽게 처지는 줄이나 나뭇가지의 포물선을 이상적인 건축 형태로 생각했다. 중력의 하중이 이상적으로 분산돼 가장 안정적인 축조물이라고 판단했다. 김 건축가는 이 파라볼라를 교회 디자인에 반영했다.
아치 형태를 받치고 있는 수직면은 건물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는 도시디자인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도시디자인은 하나의 건축물이 아닌 도시 전체, 이웃한 건물도 고려한 디자인을 말한다.
김 건축가는 남산에서 교회로 이어지는 동호로가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래서 도시의 에너지가 교회 쪽으로 흐른다고 생각했다. 보통 도시는 농촌보다 5도 정도 덥다고 한다. 이는 건물 자체가 에너지를 발산하기 때문인데 이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김 건축가는 이 에너지를 교회가 받아내는 형태로 본관을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렇게 받아낸 에너지가 반대쪽인 별관으로 반사돼 별관의 수직면도 기울어진 것이라고 했다.
장충교회는 아치형 건물이 쌍을 이룬다. 본관이 은혜관, 별관은 소망관이다. 두 건물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크기는 다르지만 대칭을 이룬다. “디자인이 너무 획기적이어서 당시 성도들이 반대할 줄 알았습니다. 처음엔 빌딩 형태까지 두 가지 안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아치형을 찬성하더라고요. 하나님이 하셨다고 봅니다.”
장충교회는 처음에 교회당 설계로 유명한 국내 한 회사에 의뢰했다. 하지만 지역 랜드마크가 되기엔 미흡해 계약금을 포기하고 새로운 건축사를 찾았다. 이는 당시 건축위원장을 맡은 장근조(80) 장로의 판단이었다. 이날 인터뷰에는 장 장로도 함께했다.
“처음에는 건축위원장을 안 맡겠다고 강력히 거부했어요. 당시 담임이었던 남창우 목사가 그러시는 거예요. ‘두 아들 목사가 교회의 중책을 맡아 달라고 요청해도 거부할 거냐’며 바로 수락 감사 기도를 하시는 거예요.” 장 장로의 두 아들은 현재 목회자로 활동 중이다. 장 장로는 그러면 전권을 달라고 해 김 건축가를 찾아갔다고 했다.
장충교회에 십자가 탑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김 건축가는 탑 대신 성전인 몸에 박힌 십자가를 표현했다. 본관 유리 벽면에 유리창의 각도를 달리해 십자가 형태를 만들었다. 십자가를 자랑하듯이 높이 달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 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했다.
교회 입구에도 십자가를 숨겨놨다. 건물 구조물 기둥에 동판을 씌우고 드릴 등을 이용해 구멍을 뚫어 십자가 모양을 만들었다. 당시 남 목사를 비롯해 성도들이 정해진 틀 안에서 자유롭게 뚫도록 했다. 낮에는 잘 안 보이지만 밤에 조명을 켜면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자유롭지만 질서가 있다.
에코처치를 꿈꾸다
장충교회는 외관도 특별하지만 에코처치(녹색교회)로도 큰 의미가 있다. 교회는 석유화학 제품을 최대한 배제하고 모든 공간을 환경친화적으로 마감했다. 교회는 지하 3~5층에 예배당을 두고 있다. 또 체육관도 지하 3~4층에 배치했다.
교회는 건축을 위해 인근 땅을 추가로 매입했지만 도로 구조상 기존 대지 1320여㎡(400여평)를 확장하진 못했다. 기존 땅과 추가로 산 땅 사이에 도로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 목사는 대예배당 1200석을 요구했고 이를 반영하려면 예배당을 지하에 둘 수밖에 없었다.
지하는 공기의 질을 관리하는 게 쉽지 않다. 기계로 환기해도 한계가 있다. 장충교회 지하 예배당도 마찬가지였다. 공사 때는 일꾼들이 수시로 밖에 나가 숨을 쉬고 들어와 다시 일했다고 한다. 이날 장 장로의 안내로 들어간 지하 예배당은 쾌적했다. 눅눅한 기운이나 습한 냄새가 없었다. 장 장로는 벽에 핀 곰팡이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는 벽과 천장을 규조토로 마감한 효과라면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공조기를 가동하지 않고도 쾌적하다고 했다.
규조토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화석으로 미세한 구멍이 수없이 많다. 숯보다도 5000배 이상 많다고 했다. 이 미세 기공은 불순물을 흡착, 분해한다. 불연성인 데다 흡음 효과도 있다. 장 장로는 이 규조토 마감재를 취급하는 리빙스톤 대표이기도 하다. 교회 마감재는 장 장로가 돈을 받지 않고 교회 건축에 헌물한 것이라고 한다.
지상의 모든 공간도 독일의 천연 페인트로 마감했다. 석고보드 대신 짚으로 만든 천연 타공 보드를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MDF나 무늬목, 시트지 같은 제품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문이나 서랍장도 모두 목재로 제작했으며 계단의 나무 손잡이조차 천연페인트로 마감했다고 장 장로는 설명했다.
김 건축가는 “설계 디자인은 내가 했지만 그 디자인을 완성도 있게 마무리한 이는 장 장로”라면서 “세계적인 건축가와 일하게 된 것만큼이나 장충교회 성도, 특별히 장 장로를 만난 것이 큰 복이었다”고 말했다.
글·사진=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