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2035 넷제로’ 제주가 하면 대한민국이 한다

입력 2025-07-10 00:32

10년 안에 탄소중립 달성하는
제주도의 에너지 대전환 계획

태양광·풍력 발전설비 7GW
그린수소 생산 매년 6만t
난방·차량, 어선까지 전기로

지자체 넘어 국가적 전략 실험
재정지원, 제도정비 뒤따라야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넷제로,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 해답은 제주에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대한민국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환경정책을 넘어 에너지 전환과 산업 개편을 이끄는 국가 전략이 됐고, 현 정부는 이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

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제주의 정서와 공동체의 생태적 삶을 조명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는 제주의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이 얼마나 독특하고 모범적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제주는 재생에너지 자원, 환경 의식, 분산형 구조 등을 바탕으로 탄소중립 전략의 선도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전국 평균의 2배 이상인 20%를 넘고, 연 200회 이상 출력 제한을 경험했으며, 일시적으로나마 RE100을 달성한 사례도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산이 단순한 양적 성장 단계를 넘어 새로운 전환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최근 발표된 ‘제주 2035 넷제로’ 계획은 재생에너지·청정수소 기반의 에너지 대전환을 목표로,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발전 비율을 100%로 높이고, 연간 470만t의 온실가스를 상쇄하는 것을 지향한다. 제주를 글로벌 에너지 전환 허브 아일랜드로 발전시키려는 이 계획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7GW 구축, 전체 전력의 7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 연간 6만t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 등을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현재 약 1GW 수준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설비와 수백t 미만의 수소 생산 능력을 고려할 때 매우 과감한 계획이며 대한민국이 2050년에 실현하고자 하는 에너지 전환 모델을 15년 앞서 구현하려는 시도다.

제주도는 정부가 검토 중인 ‘분산에너지 특화지구’의 일환으로 전기차를 에너지 저장장치(ESS)처럼 활용해 충·방전을 통해 전력시장에 참여하는 V2G(Vehicle to Grid) 사업을 실증하고자 한다. 이는 계통 안정화는 물론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수소로 전환해 다시 전기, 수송, 산업용 에너지로 활용하는 ‘섹터 커플링’ 전략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계통 부담을 완화하려는 시도다. 이를 통해 전력 저장장치, 스마트그리드, 수요 반응(DR) 등 관련 기술이 실증되고 기술 고도화는 물론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 신사업 발굴로도 이어질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은 도민의 생활 변화로도 확산되고 있다. 도시가스 기반 난방은 전기 히트펌프로, 내연기관 차량은 전기차로 바뀌고 있으며, 관광 차량의 전기차 전환도 확대되는 가운데 전기 어선까지 검토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제주의 일상 전반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실천하는 구체적 사례가 된다. 또한 흡수원 확대, 농림 상쇄사업, 지역 탄소시장 구축 등 다양한 전략이 추진 중이며 관광 활성화로 인한 폐기물 증가는 자원 순환과 에너지 회수 인프라 확충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핵심 과제들이 있다. 첫째, 방대한 재생에너지 설비, ESS, 수소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선 구체적인 조달 방안이 부족하다. 제주도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중앙정부의 지원과 민간 투자가 필수적이다. 둘째, 현재 구상 중인 재생에너지 및 수소 시스템은 유지·관리 측면에서 경제성이 충분하지 않다. 법, 제도의 혁신과 개선을 통해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해야 하며 이는 제주도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셋째, 제주의 탄소중립 전환은 지역 과제를 넘어 국가 전체의 전략적 실험이다. 중앙정부는 이를 국가적 기회로 보고 정책·재정 지원은 물론 기술 표준화와 전국 확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제주 탄소중립 도시 모델을 세계 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기회로도 활용할 수 있다. 넷째, 이 과제는 정권이나 제주지사 임기에 국한될 수 없다.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하나의 성공 모델이 국가의 미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 단위 실험이 제도화되고 국가 전략으로 확산되려면 정부와 시장, 지역사회 간 정교한 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제주의 넷제로 도전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나가야 할 때다.

윤제용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