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보다 보면 인터뷰 대상자보다 질문을 던지는 기자가 더 궁금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기자회견 보도가 그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각국 취재진의 질문 세례 중 단연 눈에 띈 건 미로슬라바 페차 BBC 우크라이나 기자의 질문이다. 어렵사리 질문 기회를 얻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다. “미국이 패트리엇 대공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판매할 준비가 됐느냐”고. 그러면서 “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를 아주 심하게 공격하고 있다”고 부연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기자에게 역질문한다. 질의응답이 오가며 밝혀진 사실은 이렇다. 우크라이나인인 기자는 현재 자녀들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지내며 기자로 활동 중이다. 그에게 자녀들과 피란을 떠날 것을 당부한 남편은 현재 최전선에서 조국을 지키는 군인이다. 기자의 말에 “놀랍다” “정말 힘들겠다”고 공감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을 일부 제공할 수 있을지 검토 중”이라고 답한다. 이어 “당신이 정말 속상해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행운을 빌고, 남편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며 답변을 마무리한다.
한 기자의 질문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접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역시 국제사회의 역학 관계 속에서 나라 보전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때가 있었다. ‘남편을 전장에 보내고 국제무대서 종전 대책을 촉구하는 여기자이자 워킹맘’이란 페차의 기구한 사연은 그에 관한 궁금증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페차의 근황을 알아보다가 당시 후일담이 담긴 영국 BBC 기사를 찾았다. 앞서 BBC는 이 소식을 전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보인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라고 평한 바 있다. 그는 해당 보도에서 “정치인에게 개인적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지라 정말 압도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수많은 남자가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일부 여기자의 남편이 그렇고, 나도 거기에 속한다”고 했다.
바르샤바에서 2015년생 쌍둥이 딸을 키우고 있다는 페차는 “기자로서 고국에서 상황을 전해야 하는데…. 그곳에 내가 없다는 게 정말 괴롭다”고 재차 말했다. 그는 실제 2022년 개전 직후 몇 달 동안 개인 SNS로 고국서 벌어진 전쟁 참상을 전했다. 자녀를 맡아줄 이가 없어 현장에 가지 못하는 그에게 영국 BBC 기자가 묻는다. “내가 키이우로 가 우크라이나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다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페차는 단숨에 답한다. “패트리엇 대공미사일이다. 러시아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으로 키이우에서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다. 기자회견에서 그 질문을 한 건 우크라이나 국민의 생사를 가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가 인터뷰에서 보여준 애국심과 기자 정신, 애끓는 가족 사랑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기자회견에서 그를 지목하면서 “저 기자는 매우 흥분했다”고 말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페차는 전 국민의 생사가 달린 질문을 품고 있었다. 그가 보여준 간절함에도 우크라이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러시아 공세는 더 거세졌고, 미국과 유럽의 지원은 예전 같지 않다. 러·우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주요국의 피로도는 점차 가중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 분쟁 등으로 주목도 또한 낮아진 상태다.
그럼에도 페차의 노력은 헛수고가 아니다. 그의 질문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이들이 우크라이나에 아직 남았다는 걸 세계에 알렸다. 전쟁 종결을 위해선 조국에 패트리엇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문득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이 “친일파를 죽인다고 독립이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한 말이 떠오른다.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페차와 그의 가족의 건승을 기원한다.
양민경 미션탐사부 차장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