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도 범접하지 못하는 항골계곡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항골계곡은 상원산(해발 1421m)과 백석봉(1170m) 사이에 비밀처럼 숨어 있다. 물이 차가워 ‘찰 한(寒)’을 써서 ‘한골’이라 부르던 게 자음동화로 ‘항골’이 됐고, 한자로 옮기면서 ‘목덜미 항(項)’자를 쓰고 있다.
이 계곡에는 2022년 10월 개통한 ‘숨바우길’이 있다. ‘숨바우’란 호흡을 통한 숲속 명상과 푹신한 원시림 바위 숲길을 걸으며 가볍게 숨 쉬듯 산책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탐방로 전체 길이는 7㎞ 남짓이다.
길은 50여년 전 나무 나르던 산판(山板·벌목)길이다. 사람 손을 덜 탄 원시림이 울창하다. 바위엔 진초록 이끼가, 길섶에는 양치식물이 푸르름을 자랑한다. 청정한 계곡수가 이룬 여러 소(沼)와 담(潭)도 잇따른다.
먼저 제1용소다. 소의 깊이는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다고 한다. 이후 화전민 터, 거북바위, 모래소, 왕바위소, 제2용소, 쌍폭포, 긴폭포 등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명소가 차례로 반긴다.
일곱 선녀 노닐던 지리산 칠선계곡
지리산 칠선(七仙)계곡은 경남 함양 땅이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힌다. 지리산 원시림에 7개 폭포와 33개 소가 천왕봉에서 칠선폭포를 거쳐 용소까지 18㎞에 걸쳐 이어진다.
들머리는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다. 두지마을을 지나 붉은색 현수교인 칠선교를 건너면 칠선계곡이 본격 시작한다. 먼저 선녀탕이다. 일곱 선녀와 곰의 전설이 얽혀 있다. 선녀탕 바로 위는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옥녀탕이다. 옥빛 물길이 선경이다. 옥녀탕을 지나면 곧 비선담통제소다. 여기까지 상시 개방 구간으로 예약 없이 올 수 있다. 하지만 그 경계 너머는 탐방 예약을 한 사람만 들어설 수 있다. 탐방은 10월까지 매주 월·화·금·토·일요일 가능하다. 하루 탐방 인원 제한은 60명이다. 탐방은 국립공원공단 예약 시스템(reservation.knps.or.kr)에서 할 수 있다.
첫 번째 폭포는 치마폭포다. 수량이 많은 날 치맛자락처럼 넓게 떨어져서 붙은 이름이다. 이후 칠선폭포. 높이 약 10m로 지리산의 다른 폭포들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지만 풍부한 수량을 자랑한다. 다음은 대륙폭포다. 우리나라 산악운동이 활기를 띠던 1964년 부산의 대륙산악회가 발견해 이름 붙였다.
마지막은 삼층폭포. 수십m에 이르는 바위 사이를 흘러 3층으로 떨어진다. 푸른 숲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부챗살을 펼쳐놓은 것처럼 넓고 시원하다.
노인봉 아래 ‘작은 금강산’ 소금강
소금강(小金剛) 계곡은 오대산 봉우리 중 하나인 노인봉(老人峰·1338m) 동쪽사면에서 발원해 연곡천과 합쳐져 동해로 빠져나간다. 이름은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율곡 이이의 글에서 유래했다. ‘유청학산기’(游靑鶴山記)라는 기행문에서 계곡의 빼어난 산세가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소금강으로 이름 붙였다. 실제 금강산과 닮은 경치도 여럿이다. 같은 이름의 구룡폭포와 만물상이나 금강산 연주담과 흡사한 명칭으로 불리는 연화담 등이다.
계곡 전체를 눈에 담고 싶으면 노인봉에서 내려가며 풍광을 즐긴다. 가벼운 걸음으로 소금강의 명소를 감상하려면 오대산국립공원 소금강탐방비원센터가 있는 연곡면 삼산리에서 출발해 구룡폭포까지 다녀온다. 왕복 5㎞에 경사가 급하지 않아 두세 시간이면 충분히 오갈 수 있다.
약 300m 계곡에 기암괴석이 펼쳐진 무릉계를 지나면 활짝 핀 연꽃을 닮은 연화담과 화강암 절벽이 십자형으로 길게 갈라진 십자소가 있다. 검푸른 빛을 띠는 물을 담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평평하고 넓은 바위로 이뤄진 식당암(食堂岩)에 이른다.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군사를 훈련하고 식사를 하던 곳이다.
이어 소금강 제1경에 꼽히는 구룡폭포(九龍瀑布)다. 크고 작은 9개 폭포가 이어져 9마리의 용이 폭포를 하나씩 차지한다는 데서 유래했다. 직접 볼 수 있는 폭포는 제8폭포와 9폭포다. 거대한 바위를 타고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꿈틀대는 용의 몸짓을 연상시킨다.
폭포를 지나면 바위 생김이 기괴하고 다양한 물체의 모습을 한 소금강 만물상(萬物相), 넓고 평평한 바위가 하얀 구름 모양처럼 겹쳐 있는 백운대(白雲臺)와 함께 삼폭포, 광폭포를 거쳐 낙영폭포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