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가 출범하면서 통일부가 분주해졌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대통령의 기조에 맞춰 업무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정부서울청사에 있는 통일부 본부는 물론 남북관계관리단, 국립통일교육원 등도 바빠졌다. 한 통일부 직원은 “내부 분위기가 약간은 어수선하면서도 활기가 돈다”고 말했다. 지난 정부 당시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 나오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통일부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명칭 변경’이 새로운 주제로 떠올랐다. 북한과 대화를 위해 ‘통일’보다는 ‘평화’를 앞세워야 한다는 취지에서 통일부 이름을 ‘평화협력부’ 등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동영 장관 후보자와 김남중 차관 역시 통일부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언급하며 명칭 변경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다만 냉랭해진 남북 관계로 인한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를 반영해 통일부 명칭을 바꾸겠다는 의도지만, 일각에선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동조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무리하게 이름을 바꾸다가 위헌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정부는 이에 따라 통일부 조직 개편과 업무 재설계부터 우선시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정부 때 축소됐던 남북 교류·협력 역할을 확대 복원하고, 명칭 변경은 장기 과제로 넘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토통일원에서 통일부까지
통일부는 그간 두 번 이름이 바뀌었다. 시초는 1969년 3월 1일이다. 박정희정부는 3·1절 50주년을 맞아 ‘국토통일원’을 창설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개원식 연설에서 “국토통일원은 국토 통일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종합적으로 또한 총괄적으로 다루는 기관이 되겠다”며 통일 관련 연구와 사료 수집 등을 역할로 제시했다. 통일 정책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정부 조직의 첫 탄생이다.
20년 넘게 이름을 유지하던 국토통일원은 1990년 탈냉전 시대를 맞으며 재탄생했다. 노태우정부는 사회주의 국가와의 수교를 통해 남북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북방정책’을 펼쳤고, 남북대화를 활성화했다. 이에 따라 국토통일원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하면서 명칭도 ‘통일원’으로 바꿨다. 통일 문제를 국가 최고 정책 수준으로 다루겠다는 명분이었다.
부총리급 기관으로 위상을 떨친 통일원 조직은 IMF 외환위기와 함께 대폭 축소됐다. 1998년 김대중정부는 부총리급 기관인 재정경제원과 함께 통일원을 장관급으로 격하시켰다.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부처의 역할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게 이유였다. 명칭도 ‘통일부’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했다. 위상은 떨어졌지만 조직이 축소되면서 집행력은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화가 지상 명령”이라지만
이재명정부는 통일을 위해 ‘평화’가 앞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후보자는 지난달 24일 첫 출근길에서 통일부 명칭에 평화를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5000만 국민의 지상명령”이라고 강조했다.
통일부 명칭 변경은 급변한 남북 관계도 영향을 미쳤다. 북한이 2023년 12월 남한을 ‘적대적, 교전 중인 두 국가’로 규정하고 통일을 삭제하는 상황에서 통일을 내세우면 대화가 힘들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지금 통일을 얘기하는 건 자칫 상대한테 ‘흡수하겠다는 거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 일각에서 통일부 이름을 바꾸자는 얘기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일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민평련) 초청 강연에서 통일부의 명칭 변경과 관련해 “헌법 제4조에도 위배되는 것”이라며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 수립과 추진’이라는 헌법 조문에 따라 통일 업무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기관으로 설립된 만큼 ‘통일’이라는 단어를 삭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인영 민주당 의원도 통일부 장관 시절 창설 53주년 기념사에서 “통일부보다 우리 통일부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더 좋은 명칭은 없다”고 했다.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인 김연철 전 장관도 지난 1일 한 행사에서 통일부 명칭 변경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당장 명칭 변경으로 공력을 소모할 게 아니라 조직을 재정비하고 역할과 기능을 분명히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명칭 변경은 종합적인 고려를 해야 한다”며 “조직 개편 등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소모적인 명칭 변경에 신경 쓰느라 시간만 낭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남북 관계 개선 의도와 달리 북한을 옹호한다는 이념 논쟁 시비만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통일’이라는 단어까지 삭제하며 이름을 바꿔야 할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도 속도 조절에 나서는 분위기다. 명칭 변경을 당장 추진하진 않고 전문가와 학계 등의 의견을 수렴할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통일부의 명칭 변경은 오랜 기간 고민해온 문제”라며 “지금 단계에선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듣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