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영 기자의 ‘살롱 드 미션’] 190번 항암, 죽음 앞에서도 예배하다

입력 2025-07-12 03:17
지난달 16일 경기도 광주의 한 추모공원 묘비 위에 환하게 미소짓는 천정은 집사의 영정 사진이 놓여있다. 천재원씨 제공

기자는 매 순간 누군가의 삶을 마주하는 사람이다.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인생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서 도전을 받기도 하고 위로도 얻는다. 각자의 고유한 서사를 가진 취재원들의 이야기는 기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이자 선물이다. 그중에서도 천정은 집사와의 만남은 내게 오래도록 남아 있는 특별한 인연이다.

천 집사를 처음 만난 건 2020년 6월 초 유독 더운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던 때였다. 휴가를 앞두고 마지막 일정으로 예정된 인터뷰였고 무기력함이 짙게 드리운 채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주한 천 집사의 얼굴은 내가 알던 암 환자라는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놀라울 만큼 밝고 환한 미소, 그리고 담담하고도 단단한 말투. 암 4기 판정을 받은 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죽음 직전에서야 복음을 만났다는 그는 이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병원 곳곳을 다니며 자신과 같은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이어진 사명자의 모습은 무거운 내 마음에도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

이듬해 그를 국민일보 청년응원 프로젝트 ‘갓플렉스’의 인터뷰로 다시 마주하게 됐다. 첫 번째 인터뷰가 죽음 직전에 하나님을 만나 복음을 증거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두 번째 만남에서는 이전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 했던 시절에 대한 고백이었다.

영화 ‘부활’에 출연한 천 집사가 생전 교회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모습. 국민일보DB

피아니스트의 꿈을 품고 치열하게 살아왔고 결국 음악대학에 진학했지만 끝없는 경쟁 속에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이후 사업으로 방향을 틀며 모든 열정을 쏟았지만 되돌아온 것은 유방암 판정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내 힘으로 쌓은 모든 수고가 결국 허망하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복음을 만나고 나서야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그의 고백 앞에서 나는 내 인생이라는 배의 키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그리고 최근 그의 부고를 들었다. 처음엔 멍해졌다. 하지만 곧 그가 했던 말들과 그날의 미소가 하나둘 떠올랐다. 평안히 하나님의 품에 안겼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천 집사의 오빠인 천재원씨에 따르면 천 집사는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예배를 요청했다고 한다. 병상에서 드린 마지막 예배는 그의 삶 전체를 요약하는 장면이었다. 몸은 무너졌지만 믿음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장례식장에는 국내외에서 2000명 이상의 조문객이 찾아왔다. 유튜브 영상과 책을 통해 천 집사의 삶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었고 대부분은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천재원씨는 “여동생이 몸이 말을 듣지 않던 때조차 복음을 전하는 일만큼은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얼마나 삶 전체로 복음을 전했던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8년 7월 암 환우와 교제하며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린 장면. 국민일보DB

190회 가까운 항암 치료와 실명, 그리고 휠체어 위의 몸. 그러나 그는 끝까지 복음을 들고 집회 현장으로 향했다. 인간의 노력은 때로 허망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그의 인생은 말해주고 있었다.

천 집사는 떠났지만 그의 믿음과 삶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는 복잡한 신학 대신 삶으로 복음을 풀어냈다.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힘을 내려놓으며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삶. 그 단순한 진리가 오히려 더 강한 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연을 접해왔지만 천 집사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됐다.

“오늘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면 할 일은 참 단순해져요. 하나님 앞에서 잘 살려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겁니다. 세상의 영광보다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구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죠.”

그가 인터뷰 끝에 남긴 이 말은 내게도 유언처럼 새겨졌다. 오늘도 나는 그가 남긴 고백을 마음에 새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하루를 정직하게 살아가길 다짐하며 그의 삶을 기억한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예배했고 예배로 그 삶을 마무리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