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계획 발표로 해수부 공직자들과 세종시에 비상이 걸렸다. 최민호 세종시장은 “지역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해수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가까운 충청권 지자체를 비롯한 지역 정치권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해수부 공직자들은 13년 만에 다시 생활환경 변화를 겪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대통령 “충청민들 이해해달라”
해수부 부산 이전은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의 부산지역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부산을 ‘해양 강국 대한민국’의 중심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공약이 실제로 이행될지 여부를 두고 세종시와 관가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던 가운데,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달 5일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해수부의 조속한 이전을 지시했다. 이전 작업은 빠르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도 해수부의 부산 이전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공공기관을 대전·세종·충남에 집중 이전했다. 그중 하나인 해수부가 부산에 가는 것은 적정하다”며 “부산은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부산으로 옮기는 것을 두고 대전·충남 분들이 ‘우리가 다 가질 거야’라고 하시진 않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 날 대전에서 진행된 타운홀 미팅에서는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지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해수부 이전 문제는 지역민들께서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다. 다 가지면 좋겠지만 충청권은 행정수도 이전의 혜택을 보지 않았는가”라며 “모든 문제가 상대적인 만큼 다른 사람과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설득했다.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과 정면 배치”
세종시는 해수부 이전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기자회견을 통해 해수부 이전 재검토를 요청한 최민호 세종시장은 지난 2일부터 사흘간 해수부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보다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전재수 해수부장관 후보자에게 1대 1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한편, 7일에는 이전에 따른 각종 우려 사항이 담긴 공개 서한문을 대통령실에 전달하기도 했다.
세종시는 과거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논의되던 당시 수차례나 검토를 거쳤음에도 ‘해수부는 세종에 두는 것이 맞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해수부를 세종에 두는 것은 국가균형발전과 행정의 효율성 등을 고려한 합리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최 시장은 “대선 공약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충분한 논의와 관련 부처 간 협의 등 만반의 준비를 거쳐 이행되는 것이 통례였다”며 “이번 대선이 조기 대선이긴 했지만, 당선 이틀 만에 충분한 검토 없이 내려진 이전 지시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해수부 부산 이전이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국가적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행정 효율성과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국회·대통령집무실의 세종 이전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수부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은 이 같은 흐름과 완전히 반대되는 조치라는 것이다.
최 시장은 “국정의 유기적 관계와 행정의 효율성 등이 먼저 고려돼야 한다”며 “정부 부처가 서울·세종·부산에 분산되면 기관 간 유기적인 협의에 문제가 생긴다. 이전에 따른 비용과 행정 효율성의 문제, 해수부 공무원의 주거와 생활문제 등도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가는 “당혹”, 정치권은 “철회하라”
해수부 공직자들은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전 관련 예산과 기능, 조직 등이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올해 안으로 완전 이전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급박하게 진행되는 탓에 직원들의 사기는 이미 크게 저하된 상태라고 한다.
해수부 공무원의 배우자라고 밝힌 A씨는 최근 최 시장에게 편지를 보내 해수부 이전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수년간 행정체계와 생활 기반을 세종에 맞춰왔다. 또 다시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수많은 공무원과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는 결정”이라며 “실질적인 의견 수렴, 공감대 형성을 통해 이전을 다시 검토해주시면 좋겠다”고 적었다.
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수치로도 확인됐다. 해수부 공무원 노조가 휴대전화를 통한 내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전 반대 여론이 86%,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의견은 47%에 달했다.
장종만 해수부 노조 사무총장은 “세종시가 처음 만들어질 때 내려와 간신히 적응했는데 또 다시 다른 지역으로 가라고 하니, 직원들이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며 “아무 정보도 없이 이전이 추진되고 있어서 다들 불안해 한다. 업무집중도는 당연히 떨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이전에 대한 정부의 충분한 설명과 설득 과정이 전무했다며 해수부 직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장 사무총장은 “12월까지 이전을 완료해야 하는 사유를 듣고 싶었지만 단 한 번의 설명도 없었다. 국정기획위원회에도 우리의 요구조건을 보냈지만 회신은 없었다”며 “최소한의 시간은 줘야 하는데 왜 굳이 연내에 이전을 해야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지역 정치권의 규탄 목소리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대전 세종 충남 충북 등 충청권 4개 시·도지사는 공동성명을 통해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충청권 최대의 이슈를 완전히 도외시한 결정에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느낀다”며 “해수부 부산 이전 여부를 충분한 공론화를 거쳐 판단하는 한편 연내라는 시한을 못 박지 말고 재논의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세종시당·대전시당도 잇따라 해수부 이전 반대의사를 밝히고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이들은 이전 반대 서명운동과 함께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세종=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