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의대 시절 크리스천 기업 이랜드가 출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세상 한복판에서, 그것도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성경적 원리가 작동한다는 것도 놀라운데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급성장한다는 게 유쾌했다. 마치 요즘 미국의 칙필레라는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가 동성애 반대를 명문화하고 주일성수를 하고도 매장당 최고의 매출과 수익을 올리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필자 역시 의대 교수를 그만두고 사랑의병원과 ㈜이롬을 설립하며 세상에 출사표를 던졌다.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고 이랜드와 비교할 수 없는 연약함과 한계를 지녔음에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음에 절대 감사하며 희열을 느낀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활동 시절 국제 CCC 설립자 빌 브라이트 박사가 예수 영화를 만든다고 할 무렵이었다. 당시 많은 반대가 있었다. 선교비 조달도 어려운 상황에서 영화 제작을 위해 천문학적 액수인 600만 달러를 투입한다고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때는 교회나 선교단체가 영적이지 않은 일, 즉 엔터테인먼트 영역에 진출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했다. 그런데 작년 글로벌하비스트서밋(GHS) 대회에 참석한 지저스 필름 프로젝트 대표의 선교 보고를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영화는 누적 100억명 이상에게 상영됐으며 공식적으로 6억명 이상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한다. 대부분 미전도종족 지역에서 이뤄진 결신이라고 했다.
영화는 지난해 기준 전 세계 210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됐고 이는 전 인류 95% 이상이 자국어로 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올 12월엔 청소년 세대를 위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전 세계 2000여개 언어로 번역돼 배급될 예정이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처럼 예수 영화는 단순한 선교 영화가 아니라 전방 선교의 혁명적 도구이며 미전도종족 선교의 강력한 무기라 하겠다. 1980년대까지 예수 영화는 필름과 영사기를 들고 다니며 세계 오지로 들어갔지만 근래에는 스마트폰 앱과 유튜브, 태양광 패널 장비, 오프라인 영상 패키지 등으로 보급되고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확산을 시도 중이다.
복음은 세상 속에 침투한다
기독교 복음은 언제나 세상 밖으로 도피하여 스스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침투해 변화시키는 생명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요 1:14) 이 복음의 침투성은 세계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이론가들과 운동가들에 의해 재발견되었고 오늘날에는 7대 영역 선교라는 이름으로 실천적 선교 전략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장 칼뱅의 하나님 주권 사상과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 주권, 프란시스 쉐퍼의 문화 변혁 신학에서 그 철학적 기초를 쌓아 국제예수전도단(YWAM)의 로렌 커닝햄, CCC의 빌 브라이트, 10/40창(window)의 루이스 부시로 이어지는 실천적 흐름 속에서 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아시아 최고 기독교 사상가로 불리는 스리랑카의 비노스 라마찬드라는 “기독교는 언어와 문화에 맞게 번역되어도 본질을 유지하는 유일한 세계 종교”라고 강조한다. 이는 단지 표현의 다양성이 아니라 생명력 차원에서 복음 자체가 태생적으로 ‘문화로 침투할 운명’을 가진 강력한 메시지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복음은 끝없이 번역되고 거주하며 변혁한다.
복음은 한 사회의 중심부로 들어가 그 언어로 이야기되고 뿌리내린 다음, 끊임없는 재창조를 통해 그 구조를 뒤흔든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병든 신화(상대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과학주의 실용주의 등)는 복음의 빛 아래 해체돼야 할 현대의 우상이다. 복음은 단순히 위로가 아니라 공적 담론 속에서 겨우 지탱하고 있는 허망한 신화를 전복시키는 강력한 선언문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미국 뉴욕 리디머교회 설립자 팀 켈러 목사는 복음이 단지 교회 안에서 선포되는 교리가 아니라, 도시의 중심부로 침투해 우상을 해체하고 문화 경제 예술 정치 등 모든 병든 구조를 복음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이며 총체적 문화변혁의 원동력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선교적 교회의 주창자인 레슬리 뉴비긴은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잠식된 현대 사회에서 교회는 단지 설교의 장소가 아니라 복음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표적 공동체임을 설파하고 있다.
가톨릭의 복음주의 운동
필자는 지난해 2월 빌리온소울하비스트(BSH) 글로벌 사역팀과 폴란드 크라쿠프를 방문했다. 거기서는 ‘글로벌 2033’이라는 대회가 열렸는데 집회는 로마가톨릭 내의 복음주의자들과 개신교의 복음전도 단체들의 연합 모임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영혼 구원에 대해 개신교가 가톨릭을 섬기는 멘토링 시간이었다. 특히 BSH의 비전을 선포했을 때 모두 관심을 집중했던 것을 기억한다.
크라쿠프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 도시이자 악명높은 유대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크라쿠프는 또 가톨릭의 심장 같은 도시로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한다. 2016년엔 가톨릭 신앙 운동의 근원지로 세계청년대회가 열렸다. 크라쿠프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를 배출한 야기엘로니언대학교가 있는 인문학적 도시이기도 한데, 여기서 전 세계 13억 가톨릭신자를 대상으로 복음 운동이 시작된 것은 하나님의 거대한 경륜 외에는 해석할 수 없다.
가톨릭에서의 복음 운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 평신도의 역할,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 타 교단과의 대화, 성령 체험 등을 개방적으로 수용한 이후 급물살을 탔다. 이후 성령 쇄신 운동(CCR·Catholic Charismatic Renewal) 및 성경 중심 영성운동이 자리 잡았고, 복음주의 개신교와의 교류 속에서 성경 중심, 개인 회심, 선교적 열정을 강조하는 가톨릭 복음주의자들이 등장했다. 1967년 미국 피츠버그 두켄의 한 가톨릭 대학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가톨릭 내에서도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며 전 세계 1억2000만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소속돼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평신도 성경공부 운동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스콧 한(복음주의 개신교 목사 출신으로 가톨릭 내에서 성경 중심의 강의와 책으로 큰 영향력 행사), 랠프 마틴(리뉴얼 미니스트리를 창립한 평신도 복음화 운동 선구자), 마이크 슈미츠(유튜브와 팟캐스트로 세계적 영향력 행사) 3인방이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브라질은 깐사옹 미디어 공동체와 샬롬 청년 공동체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필리핀의 엘 샤다이 운동과 예수의 빛 공동체, 프랑스의 테제공동체, 나이지리아의 CCR 초대형 집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2억명 회원 확보를 목표로 복음 전파에 매진하고 있다.
이제는 영역 선교다
BSH 멤버로서 로마가톨릭 내 영혼 구원에 전력하는 이는 이탈리아 사업가 헨리 카펠로가 있다. 그는 YWAM 출신으로 가톨릭을 섬기는 사역을 통해 한국인 부인과 함께 복음 운동에 힘쓰고 있다. 필자는 가톨릭을 생각할 때마다 강원도 태백의 예수원 설립자 대천덕 신부님을 생각한다. 성공회 신부였던 그는 ‘고목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표현을 쓰며 가톨릭은 죽은 게 아니라 언제든 성령의 생기가 들어가면 살아난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애버딘대학교의 앤드루 월즈 교수는 예언자적 통찰력을 가진 위대한 선교학자였다. 그가 2021년 83세로 별세했을 때 전 세계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그를 ‘글로벌 기독교’의 설립자로 추모했다. 월즈 교수는 ‘침투적 교회’라는 책에서 기독교가 단지 서구 유산이 아니라 세계 각 문화 속으로 침투해 뒤집는 능력을 가진 살아있는 신앙이라고 했다. 그의 학문과 삶은 복음의 문화 변혁성과 세계 중심의 이동성을 선포하며 21세기 기독교학과 선교학의 지평을 열었다.
그는 기독교가 헬레니즘-로마 문화권에 진입할 때 자신들을 격리하는 선택이 아닌 침투하는 전략을 써서 그 문화의 중심부에서 헬레니즘 로마 문명이 지닌 총체적 시스템(신화 철학 법 생활양식 등)을 무너뜨리고 영향력 있는 변혁 주체로서 속속들이 문화를 변혁시켰다고 했다. 월즈 교수는 기독교의 중심이 유대→헬라-로마→유럽→북미→글로벌 사우스(아시아 아프라카 중남미)로 이동하며 끝없이 문화 안으로 침투해 왔음을 언급하면서 복음이 특정 문명이나 언어에 종속되지 않고, 그 안에서 재창조되는 힘을 가진 ‘살아있는 말씀’임을 증명했다. 유대의 기독교가 헬라-로마 세계에 침투하면서 보편성을 확보하고 중세와 종교개혁을 거쳐 유럽의 문화를 바꾸어 놓았고 신대륙으로 진출함으로써 세계화의 길을 열었다고 진단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기적은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자의 것이다. 기적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힘차게 내딛는 첫걸음으로 시작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내딛는 마지막 걸음으로 완성된다. 이제 지역의 측면에서 복음의 확산은 마무리되었다고 본다. 최후의 프론티어는 모든 삶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가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다. 지역 선교를 넘어 영역 선교와 이슈 선교로 진출하되 아직 침투한 적 없는 모든 어두운 곳을 타깃으로 삼아보자. 오직 믿음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강력한 침투력을 가진 하나님 나라의 용사가 되자. 더 이상 사역의 경쟁을 유발하는 레드오션을 버리고 완전히 열려 있는 블루오션에 발을 담그는 최후의 프런티어가 되자.
KWMA 회장·사랑의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