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주4.5일제, 금요일 오후가 있는 삶

입력 2025-07-09 00:50

쉬어도 생산성 저하 없도록 일하는 방식 바꿔야
노동시장 이중화 막기 위해 중소기업 정책적 뒷받침 필요
시대 흐름이자 가야 할 방향 삶의 질 높이는 계기 되길

그에게 금요일 오후가 주어졌다. 아직 매주는 아니고 격주로만. 그래도 그는 이날만을 기다린다. 격주 금요일 오후 1시 퇴근, 그는 오롯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 시간을 쓴다. 영화를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카페에 간다. 주4.5일제, 금요일 오후가 있는 삶. 달콤하다. 한번 발을 내디디면 다시는 돌아가기 어렵다. 격주로 주4.5일제를 시행 중인 한 회사원의 이야기다.

주5일제가 본격 도입된 것은 2004년 7월이다. 그전에는 토요일에도 출근하고 학교에 갔다. 사회 전체로 이 제도가 정착되기까진 시간이 더 걸렸다. 이제는 주4일제를 위한 징검다리로서 주4.5일제를 꿈꾼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방식은 다양하지만,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선호되는 형태는 금요일 오후에 쉬는 것이다. 단, 임금 삭감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야당은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고 4일간 1시간씩 더 일하고, 5일째는 반일 근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새 정부는 노동시간 자체를 줄이자는 입장이고, 많은 직장인이 이에 공감한다. 여야 모두 방향성엔 동의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반드시 해내야 한다”며 “시점은 특정하지 못해도 가능한 한 빨리 가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 국가다. 2023년 기준 국내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187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30시간 많다.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과는 529시간, 매달 44시간 차이가 난다.

과거에는 장시간 노동을 통해 생산성을 높였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IT 등 첨단산업 기업들은 ‘금요일 오후는 쉽니다’라는 조건을 내세워 인재를 유치한다. 여유가 생기면 취미를 즐기거나 여행을 가게 되고, 이는 내수 진작과 저출생 극복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문제는 생산성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일부만 누리는 제도로 노동시장 이중화를 심화시키지 않을지다.

쉬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는 사실일까. 해외 사례를 보자. 아이슬란드는 2015년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를 시범 도입했다. 번아웃은 42% 감소하고, 노동생산성은 3.8% 증가했다. 2020년부터 산업 전반으로 확대됐고, 현재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이런 환경에서 일한다. 벨기에는 2022년부터 주4일제를 공식화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도 주4일제 실험 결과 업무 효율성과 직원의 행복도, 근무 몰입도, 기업 매출까지 증가했다. 보수적인 일본도 변화 중이다. 쉬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통념은 이제 수치로 반박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근무시간만 줄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성공한 해외 사례들은 업무 방식도 함께 바꿨다. 회의 시간을 줄이고, 집중 업무 시간을 확보하며, 성과 중심의 조직문화로 전환했다. 한국에서도 생산성 저하 없이 성공하려면 선결 조건이 있다. 평가는 시간 투입이 아닌 결과 중심이어야 한다. 불필요한 업무는 줄이고, 근무 시간에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시스템을 고도화해 효율을 높이고, 직무 재설계와 디지털 전환도 필요하다.

과거 주5일제가 그랬듯, 노동시장 이중화는 우리 사회에 던져진 과제다. 모두가 동시에 주4.5일제를 시작할 순 없다. 반도체 연구·개발처럼 집중 노동이 필요한 직종도 있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은 대기업보다 도입이 더딜 수 있다. 누군가는 금요일 오후 여행을 떠나지만, 어떤 이는 배달 오토바이 위에서 더 많은 주문을 처리한다. 쉼의 권리가 불평등하게 배분돼선 안 된다. 경기도는 지난달부터 임금 삭감 없는 주4.5일제를 시범 운영 중이다. 참여한 68개 기업엔 임금보전 장려금과 근로환경 개선 컨설팅이 제공된다. 좋은 사례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과 세제 혜택 등도 병행돼야 한다.

주5일제는 단순히 쉬는 날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삶의 질, 여가 문화, 생산성, 가족과의 시간을 바꾼 제도적 변화였다. 야근이 줄며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졌듯, ‘금요일 오후가 있는 삶’도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될 수 있다. 주4.5일제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이를 앞당기려면 일하는 방식의 혁신, 성과 평가의 재정립, 일과 삶을 둘러싼 문화의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넘어 삶의 질을 높이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근본적인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