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42)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교회를 다녔다. 주일날 농사일을 접어두고 교회 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러다 대구 인근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어렴풋이 예수를 믿는다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을 배웠다.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도 주고, 5리를 가자는 자에게 10리까지 동행하라(마 5:40~41)는 말씀을 배우면서 나름대로 기독교 신앙의 요체를 깨달았다. 기독교 신앙은 결국 거절하지 않는 삶이라고.
구하는 자에게 베풀고 도움을 청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는 삶의 태도, 이것이 예수님 가르침의 본질이라고 이해했다. 이때부터 거절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이는 내 행동 양식을 결정한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1975년 10월 입대를 앞두고 나 스스로 다짐한 바가 있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남이 하기 싫은 일을 내가 하기로 다짐했다. 친구들이 다 비웃었다. 입대하면 하루도 못 가 그 생각을 버릴 거라고 했다. 논산훈련소 25연대 훈련은 힘겨웠다. 일과가 끝난 후에도 사역병을 부르면 사역하러 뛰어갔고, 보초는 남들이 피하는 시간을 자원했다. 이때 소중한 것을 배웠다.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자원하는 섬김은 기쁨일 수 있다는 점을. ‘구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는 말씀은 늘 나의 길을 인도했다.
혼기가 됐지만 배우자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교회 다니는 한 여성이 내게 전화를 했다. 한번 만나고 싶다고. 여러 일로 분주해 만남이 주저됐지만 거절치 않는 것이 내 철학이기에 그 여성과 만나기로 했다. 3월이지만 겨울의 세찬 바람이 귓전을 스치는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다. 이런저런 대화 도중 그는 결혼 상대가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니 ‘그럼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지’ 묻기에 평소 결혼관을 말했다. 조용히 듣던 그는 “그럼 저와 결혼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거절하지 않는 것이 생활 철학인 나는 그 여성과 결혼했다. 1979년 12월이었다.
구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하는 성경 말씀은 내 삶을 직조했다. 젊은 날의 다짐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지만 뒤돌아보니 그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인도였다.
<약력> △고신대 교수, 부총장 역임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국제학술지 우니오쿰크리스토(Unio Cum Christo)·개혁신학논평(Reformed Theological Review)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