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폭염의 윤리를 생각하다

입력 2025-07-09 00:34

6말7초 시작된 역대급 더위
대응 방식은 계층 따라 달라
청량함 나누는 마음 절실해

올해 초 필자는 역대급 폭염이 찾아올 거란 기상청의 여름 예측 시나리오가 틀리기를 기대했다. 5월까지 낮은 기온이 이어지던 추세가 그랬다. 장마가 쉽게 기세를 꺾는 모습을 보인 것 역시 기대를 부채질했다. 올해, 2025년의 여름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은 시원한 계절로 남아주길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답은 없었다. 기상청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역대 최고급 기록을 이미 갈아치운 6말7초의 시작이 그렇다. 그야말로 역대 최고의 폭염이 시작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폭염주의보, 폭염경보를 알리는 기상재난문자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졌다. 연일 폭염경보를 알리는 문자에 나타난 기온은 그야말로 기상예보를 들여다보기 무서울 정도로 최고 기록을 경신 중이다. 중요한 건 체감 온도다. 정오를 넘긴 시간 거리를 나가보면 무더위란 말이 부드럽게 느껴질 정도로 뜨겁다. 도심 거리를 조금만 걸어도 숨이 막힐 정도로 덥고 습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폭염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이 계층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걸 보게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해마다 뜨거워지는 폭염의 기세에 비례해 폭염을 대비하는 대응의 밀도가 점점 더 계급적 양상을 보이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득분위가 높은 계층일수록 개인의 여가와 복지에 더 힘껏 투자하며, 더위를 피할 기회의 폭을 넓혀 나간다. 전기요금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집과 직장, 온종일 에어컨을 틀어도 문제될 게 없다. 돈 염려가 없으니 때가 되면 휴가를 이용해 선선한 나라로 여행을 다닐 수도 있다. 이들에게 열대야는 뉴스를 통해 확인하는 데이터 변화의 일종일 뿐이다. 부러 운동하기 위해 아스팔트 지열을 피해 알맞게 조성된 숲, 공원을 오가며 흘리는 땀방울은 이른바 헬스 활동의 연장이다.

하지만 소득분위가 낮은 계층 혹은 소상공인, 자영업자일수록 폭염은 순간순간 숨이 턱턱 막히는 전쟁과 같다. 손님이 줄어든 자영업자에게 냉방비는 적자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므로, 손님을 받지 않는 준비 시간엔 선풍기로 버티는 경우도 다반사다. 택배 기사, 공사 근로자 역시 땀이 식을 날, 몸 전체에 온열의 기운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모든 사례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남는다. 복지의 공익성보다 개인의 처신이 인정받는 사회에서의 폭염은 어떤 이들에겐 넉넉히 피해갈 수 있는, 거리가 먼 위협이 될 수 있지만 또 어떤 이들에겐 하루하루가 살인적 더위와의 전쟁으로 다가올 수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조금 더 파고들면 폭염을 촉진하는 원인엔 환경 파괴의 가속화가 있으며, 이러한 이상 기후 촉발의 한 원인으로 이산화탄소의 과다 배출과 화석연료 사용, 대체에너지 사용 감수성의 저하 등 이른바 선진국형 산업 선도 주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거시적인 문제로 인한 이상기후 발생이 미시적인 개인의 삶에 차별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나타난다는 게 서글프기만 하다. 더 좋은 환경을 찾는 이들이 사용하는 냉방시설의 폭증이 또 한편으로 폭염을 부채질하고, 더 나아가 폭염의 직접 피해자로 내모는 간접적 위해 행위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걸 더는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여름이니까 더운 거지’라는 식의 낭만이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폭염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 새로운 윤리가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다수가 더위를 피해 숨는 동안 작열하는 태양을 온몸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진 이웃을 생각하고, 더위를 함께 이겨낼 수 있는 배려와 상생의 윤리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거듭 안타깝게도 2025년의 7월과 8월은 슬픈 열대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이 여름을 재난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부디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 누군가와 함께 잠시의 청량함을 나눠 가지기 위해 애쓰는 것, 그 태도전환의 한걸음이 절실한 요즘이다.

주원규
소설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