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주눅 들지 않고

입력 2025-07-09 00:32

때때로 가슴을 파고드는 누군가의 삶을 만나곤 한다. 어젯밤, 무심코 집어 든 책에서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시인이 쓴 짤막한 일기였다. “기분이 좋다. 가을볕이 찬란해서. 오늘은 가난에 주눅 들지 않고, 시집을 읽겠다.” 드물게 찾아든 좋은 기분이 오죽 반가웠으면 기록으로 남겼겠는가. 먹먹해지는 마음에 소슬바람이 일었다. 가난의 그림자를 멀찍이 물리고 시를 벗 삼아 하루를 만끽하겠다는 태도가 얼마나 대담하고 자유로운지, 지난날의 내 모습을 회상하며 깨달았다.

남루한 현실에 잠식당하지 않겠다는 시인의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텅 빈 냉장고나 밀린 고지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삶은 종종 나를 움츠리게 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에만 몰두하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기에 인생의 큰 물결은 보지 못했다. 현실에 매여 있으면서도 거기서 벗어나려 허덕였던 나날을 돌아보면 물질의 결핍보다 마음의 결핍이 더 나를 옥죄였던 것 같다. 더 나은 일상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식의 내면화된 체념은 삶을 무채색으로 덧칠했다. 한때는 시집을 펴는 일조차 대단한 사치처럼 느껴졌다. 먹고사는 데 시는 쓸모가 없고, 시를 읽는 시간은 여유로운 사람들의 몫이라 여겼다. 그렇게 책과 음악, 영화, 산책 등 사유의 촉매가 되는 많은 것들을 내 삶에서 유예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언젠가 형편이 나아지면’ 같은 말들로 허용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시인은 달랐다. 세상에 고루 퍼진 찬란한 가을볕 아래에서 감정의 떨림을, 살아 있음의 진동을 느꼈다. 사나운 현실에 기죽지 않고, 가난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에게 시를 읽는 기쁨을 허락했다. 그것은 자신의 처지를 덜 비참하게 만드는 위안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한 줌 빛을 비추는 숭고한 의식이자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이었다. 묵묵히 존엄을 지켜가는 시인의 태도를, 나는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봤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