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가 출범 첫 한·일 과거사 문제를 두고 일본에 완패했다. 일본이 일제 강제동원 현장인 군함도(하시마) 탄광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약속했던 강제동원 후속 조치에 대한 검증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정식 의제로 채택하려 했으나 일본의 공세에 밀려 실패한 것이다.
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47차 유산위에서는 ‘세계유산 보존 현황’과 관련해 한국 측이 제시한 잠정 의제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앞서 한국은 군함도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기 위한 일본 정부의 후속 조치를 점검해야 한다며 ‘해석 전략 이행에 대한 검토’를 잠정 의제로 올렸다.
유산위에서 정부 대표단은 이 사안이 정식 의제로 채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0년 전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위원회는 일본에 “조선인 강제동원 등 ‘전체 역사’(full-history)를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이행하라”고 촉구했으나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일본 측은 팽팽히 맞섰다. 이미 유산위에 군함도와 관련한 후속 조치 이행 점검이 4차례에 걸쳐 논의된 바 있고, 관련한 후속 조치를 지속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더이상 유산위의 의제로 다루지 않고 한·일 간 합의로 끌어가야 할 사항이라고도 했다. 일본에 힘을 실어주는 위원국 역시 군함도 문제와 관련해 정식보고서(SOC)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절차상의 문제를 언급했다. 유산위는 사전에 SOC가 제출된 안건에 대해서만 자동으로 정식 의제로 올린다. 2023년 열린 유산위는 일본에 SOC가 아닌 ‘업데이트 자료’(Follow-up Report)를 요구했다.
1시간가량 논의가 이어진 끝에 결국 군함도 문제 정식 의제 채택 여부를 놓고 21개 위원국이 비밀 투표를 진행했다. 한·일이 과거사 문제를 놓고 국제무대에서 표결로 맞붙은 건 처음이다. 표결 결과 7개국이 일본의 손을 들어주면서 결국 군함도 후속 조치 이행 문제는 의제로 채택되지 못했다. 한국은 3표를 얻는 데 그쳤다. 기권 8표, 무효 3표였다. 정부는 표결 후 “의제 채택에 필요한 표가 확보되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비록 아쉬운 결과를 남겼지만 대표단은 막판까지 물밑에서 치열한 외교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유산위 논의에서 아예 빠져 있던 군함도 문제를 ‘잠정 의제’로 상정하기 위해 사무국을 설득하는 데까진 성공했다. 표결 가능성을 염두에 둔 대표단은 다른 위원국 설득에도 나섰으나 상당수가 부담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유네스코 주요 자금 지원국 중 하나로서 영향력이 큰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재명정부는 민감한 과거사 문제와 경제·안보 협력을 분리하는 ‘투트랙’ 전략을 강조했지만 이번 사안에 대한 국민적 반감으로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는 게 아니냔 우려가 나온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