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첫 돌을 기념하며 돌 사진을 찍고,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가면 기념품을 사온다. 퇴임할 때는 직장 동료들이 감사패를 준다. 이처럼 우리가 돌과 결혼, 퇴임, 환갑 등 인생의 중요한 날을 기념하는 문화는 언제부터 지켜졌을까. 과거 기념 방식도 지금과 비슷했을까.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이 인생의 특별한 날을 기억하고자 하는 한국의 기념 문화를 조명하고자 ‘오늘도, 기념: 우리가 기념품을 간직하는 이유’ 특별전을 한다. 박물관 측은 “기념이 넘쳐나는 시대에 기념품을 중심으로 오늘의 기억 가치를 탐구하고, 진정한 기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기념의 문화사로 본 한국인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국보 등 200여점이 나왔다.
조선시대 최고의 기념품은 국보 ‘기해기사계첩(己亥耆社契帖)’일 것이다. 숙종(재위 1661∼1720) 임금은 70세 이상, 정2품 이상의 중신을 대우하고자 기사(耆社) 모임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원로 대신들을 위해 1719년 4월 17∼18일 궁궐에서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영중추부사 이유, 영의정 김창집 등 고령의 대신 11명을 초청해 그들의 장수를 축복했다. 이날 행사를 남기기 위해 화원에게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게 했다. ‘기해기사계첩’으로 불리는 그림은 총 11부가 제작돼 1부는 관청에서 보관하고, 나머지는 참석자들에게 기념으로 나눠줬다.
영조(재위 1724∼1776) 때인 1765년 음력 8월에는 기로소(고위 관료의 친목·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에서 기로연(임금이 원로대신을 위해 연 잔치)이 열렸다. 또 음력 10월에는 경현당에서 영조의 망팔(71세)을 기념하는 수작례가 열렸다. 영조는 두 행사를 8폭짜리 병풍에 한꺼번에 담아 그리게 했는데, 바로 그 ‘영조을유기로연·경현당수작연도병’도 나왔다. 병풍 속에는 영조가 왕세손(훗날 정조)을 데리고 기로소를 찾는 모습, 신하에게 술을 내려주는 모습 등이 담겼다.
전시장을 돌다보면 조선시대 왕의 행차에 쓰는 일산을 연상시키는 대형 기념품을 만날 수 있다. 순조 때 초산군(평안북도 초산군) 부사를 지낸 문인 이만기(1825∼1888)가 임기를 마쳤을 때 마을 사람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바친 기념품 ‘만인산’이다. 우산 형태의 천에는 제작에 참여한 2091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수놓아져 있다.
병풍 그림이나 만인산 등은 요즘에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하지만 그 시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최상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지금 같은 형태의 기념품, 기념하는 문화는 근대가 시작된 고종 시대부터 비롯됐음을 전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대한제국 시기에 내장원경, 탁지부대신 등을 지낸 이용익(1854∼1907)의 초상화가 이를 증거한다. 초상화에는 최초의 기념장(記念章)인 ‘고종 황제 성수 50주년 기념장’이 묘사돼 있다. 기념장은 대한제국기에 중요한 행사를 기념하고자 참가자에 나눠준 일종의 배지를 일컫는다. 이 초상화의 존재는 학계에 알려져 있었지만 대중에게 공개되는 건 처음이다.
전시에서는 관광과 기념 문화를 별도 섹션에서 소개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관광지 기념품 문화는 일제강점기 생겨났다. 금강산 여행 붐이 크게 일면서 관광객에게 판매하는 다양한 상품이 나왔다. 호텔에서 주는 책갈피도 그중 하나인데, 한 면에는 금강산 절경이 인쇄돼 있고 다른 쪽 면에는 호텔 스탬프가 찍혀 있다. 일본인 사이에 식민지 경성을 여행하는 문화가 성행하면서 이들을 겨냥한 신선로, 목각 인형 등의 기념품이 경성 미츠코시백화점 등지에서 판매됐다. 궁중에서 사용되던 신선로에 경성의 상징인 광화문, 남대문이 그려져 있어 이채를 띤다.
관람객에게 가장 반가운 코너는 ‘특별한 순간, 빛나는 기념품’ 섹션이다. 출산부터 입학과 졸업, 군 입대, 결혼, 퇴직, 환갑 등 생애주기를 따라 이어지는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는 물건들이 나왔다. 집집마다 있게 마련인 돌 사진, 졸업 사진, 전역기념 전투복, 자개 혼수함 등이 레트로 감성을 자극한다.
공모 방식으로 수집한 ‘내 인생의 기념품’도 눈길을 끈다. 마라톤 42.195㎞를 완주하고 받은 첫 마라톤 메달, 어린 시절 호기심에서 수집한 트럼프 카드, 아이돌 가수 응원봉, 콘서트 티켓 등이 일상 속의 기념 문화를 돌아보게 한다. 9월 14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