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AI 교과서 폐지, 대안 있나

입력 2025-07-08 00:32 수정 2025-07-08 00:32

요즘 사람들의 대화에선 인공지능(AI)이 빠지지 않는다. 저마다 AI 활용 노하우를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다. 최근 들은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서울의 한 고교생 얘기였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수학 과목의 유명 일타강사 강의를 AI에게 학습시킨 뒤 이를 토대로 내신 대비 공부 계획을 짜보게 시켰다고 한다. 시험 준비는 물론 향후 진로 계획까지 AI에게 묻는다고 했다. 학업뿐만 아니라 친구 관계, 연애 고민은 물론 소소한 취미에 대한 대화까지 AI와 나누는 게 익숙하다는 게 요즘 10대들의 얘기다.

AI 대전환을 통한 글로벌 강국으로의 도약은 이재명정부의 공약이었고, 이제는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다. 이재명 대통령 본인도 대선 기간 “자료 조사나 분석을 보좌진보다 챗GPT에 더 의존한다”고 밝히면서 모든 국민이 기본 인프라로 AI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시점을 앞당기고 준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미래인재 양성을 위해 생애주기별 맞춤형으로 AI 교육체계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정책이 공약에 포함돼 있다.

이렇듯 AI가 일상으로 스며들고 국정과제가 된 상황과 달리 공교육 현장에서의 AI 활용 정책은 후퇴하는 듯하다. 지난 정부에서 예산 5000억원이 투입된 ‘AI 교과서’가 폐지 기로에 서 있다. 현재 AI 디지털교과서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여당과 일부 교사단체들이 문해력 저하와 디지털 과몰입 등을 내세워 도입을 반대한다.

학교 현장에서 일부 사용 중인 AI 교과서는 영어, 수학, 정보다. 정책의 연속성이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일선 학교 채택률이 낮은 상황이지만 이를 활용하는 일선 학교와 교사들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실제 AI 교과서 활용 사례를 들어보니 어느 학생이 어떤 부분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 학생 본인은 물론 교사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학생 수준에 따른 맞춤형 학습이 가능하다고 했다. 교사들 역시 정량평가가 한층 수월해지면서 잘 활용하면 성적 평가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겠다는 반응도 한다고 했다. 또 AI 교과서에 탑재된 ‘오늘의 기분 표시하기’ 기능 등을 통해 학생들과 좀 더 활발히 소통하게 되는 등 예상 밖의 긍정효과도 있다고 한다.

물론 모두가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AI 교과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교사들 역시 세대나 개인 성향에 따라 AI 교과서보다 종이 교과서를 선호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결국 AI 교과서의 성패는 사람, 교사와 학생이 이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지난 정부에서 상당한 예산이 투입됐고, 10여개 출판사가 수십, 수백억원을 들여 개발하고 투자한 상황에서 정책이 이렇게 쉽게 뒤집히면 되겠느냐는 비판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AI 교과서 폐지라는 결정이 전 정권이 추진하던 정책이라 안 된다는, 반대를 위한 정치적 반대는 아닌지 신중히 따져보면 좋겠다. 지난 학기 학교 현장에서 도입해 사용했던 교사와 학생들의 현장 목소리와 철저한 효과 분석 대신 정치·이념적 판단이 앞선 결정이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AI 시대의 교과서 도입 문제는 이재명정부 초중등교육 정책을 넘어 AI 시대 미래인재 양성과 국가경쟁력이 달린 사안이다. 무엇보다 향후 관련 정책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초중등교육은 물론 AI 생태계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점도 우려를 자아낸다.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리든 학교 현장에 미칠 파급력과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김나래 문화체육부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