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 판권 판매에 그치지 않고 해외 배우가 현지 언어로 연기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국내 제작진이 참여하는 ‘제작형 수출’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일본판으로 제작된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사진)가 대표적인 사례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웹툰이 일본에서 인기를 얻자 CJ ENM 재팬과 스튜디오드래곤, 자유로픽쳐스 등이 일본 대형 제작사 쇼치쿠와 손잡고 공동 제작에 나섰다.
이 드라마는 지난달 27일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 공개되자마자 랭킹 1위에 올랐다. 시청자 반응도 긍정적이다. 일본 최대 콘텐츠 리뷰 사이트인 ‘필마크스’(Filmarks)에서 평균 4.1점(5점 만점), 세계 최대 콘텐츠 평점 사이트인 ‘아이엠디비’(iMDb)에서 9.2점(10점 만점)을 기록했다. 시청자들은 “일본판만의 현지화가 잘 됐다” “코미디와 서스펜스가 균형적으로 섞여 있다”고 호평했다.
국내 제작사가 ‘제작형 수출’을 선택하는 주된 이유는 수익성에 있다. 공동제작사가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비용을 분담해 콘텐츠를 제작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현지 시장 진출에 유리한 유통망에 접근할 수 있다. 작품이 흥행하면 글로벌 팬을 확보하고 브랜드 가치도 상승하는 등 더 큰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국내 한 제작사 관계자는 7일 “업계에서는 공동 제작이 글로벌 제작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일본은 국내 제작사에 매력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방송시장 규모가 한국보다 커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흥행 지적재산(IP)의 수명이 길다는 점에서 콘텐츠 하나로 장기적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도 갖추고 있다. 전시, 굿즈, 협업 마케팅 등 IP를 활용한 상품화 사업을 확장하기에도 유리하다.
국내 주요 제작사들은 올 하반기에도 공동제작 콘텐츠를 잇달아 선보이며 해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의 자회사 지티스트가 제작한 일본 드라마 ‘소울 메이트’는 하반기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이 같은 글로벌 협업을 기반으로 향후 매년 미국·일본 드라마 3~5편을 정기적으로 선보여 글로벌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제작형 수출은 일본뿐 아니라 미국, 튀르키예, 대만 등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중앙그룹 산하 제작사인 SLL은 최근 대만콘텐츠진흥원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드라마·영화 공동 개발에 나섰다. ‘킹더랜드’, ‘괴물’ 등 자사 IP의 글로벌 리메이크 프로젝트도 활발히 추진 중이다.
OTT 중심의 제작 환경 변화와 제작비 상승, 방송 편성 축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제작사에 이 같은 방식은 새로운 돌파구가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흐름이 K드라마의 외연과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공동제작은 K드라마의 세계적 영향력을 키우고, 국제적 콘텐츠 기준을 넓히는 의미 있는 시도”라며 “다만 단순한 역할 분담을 넘어 양국 문화에 대한 깊은 상호이해가 이뤄져야 진정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