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허울좋은 가자 프로젝트

입력 2025-07-08 00:40

1917년 영국 총리 아서 밸푸어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인 국가 수립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한다. 제1차 세계대전 혼란을 틈타 ‘유대인의 민족 고향’을 만든다는 이 선언은, 오스만 제국령이던 팔레스타인에 유럽계 유대인을 이주시켜 아랍계 주민을 밀어내는 기초가 된다. 팔레스타인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6일 전쟁을 비롯해 최근 핵 개발을 둘러싼 이란과의 전쟁 등 중동 지역 아랍 국가들과의 크고 작은 분쟁의 진원지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1세기 만에 영국인 이름이 또 등장한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다. 그의 이름을 내건 토니 블레어 재단(TBI)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가자 리비에라 프로젝트’의 구체화 작업에 관여해온 정황이 나온다. TBI는 애써 부인하지만 폐허가 된 가자 지구를 두바이식 인공섬, 스마트 제조 특구, 블록체인 기반 무역 허브로 바꾸자는 회의와 문서 작성에 일부 참여했다는 게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다.

이스라엘 민간 자본 주도로 추진되는 이 구상은 ‘가자 대전환 신탁(The Great Trust)’으로 구체화됐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재무 모델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와 걸프 국가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사로 ‘가자 트럼프 리비에라’, ‘일론 머스크 제조 특구’, ‘MBS 링’ 같은 이름도 붙였다. MBS는 사우디아라비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자를 지칭한다. 문서에 따르면 가자 주민의 25%를 9000달러씩 주고 이주시키고 가자 공공 토지를 디지털 토큰화해 외국인 투자자에게 팔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가자 주민은 가성비 높은 숫자로 취급될 뿐이다. “한 명이 떠날 때마다 2만3000달러가 절감되고 가자 지구의 가치는 0달러에서 3240억 달러로 상승한다”는 계산서를 보면 이 구상이 부동산과 가자 주민의 희망을 맞바꾸는 비극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마치 1917년의 선언이 ‘국제 평화’의 미명 하에 식민지 계획을 정당화했듯 가자 주민 추방의 대가를 ‘재건 투자’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