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 누비며 복음 파종… 인디오 마을 골목마다 기도소리 가득

입력 2025-07-08 03:07 수정 2025-07-08 16:47
브라질 이스피리투산투주 빅토리아교회 교인들이 최근 주일예배를 위해 예배당에 모여있다. 김용철 선교사 제공

브라질 아마존은 멀고도 먼 선교지였다.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멕시코시티까지 14시간이 걸렸지만 이는 단지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브라질 상파울루까지는 9시간, 이곳에서 국내선을 타고 아마조나스주의 주도 마나우스까지 가는 데만 4시간이 더 걸렸다.

비행기를 탄 시간만 25시간이었다. 공항 대기까지 합쳐 꼬박 40시간이 지나서야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비행 피로 때문인지 24시간마다 먹는 독한 말라리아약 때문인지 땅을 밟았는데도 어지러웠다. 울렁거림이 사라지지 않았다.

김용철 선교사

그런데 이곳이 목적지가 아니었다. 김용철(69) 브라질 빅토리아순복음교회 목사를 만난 기쁨도 잠시, “한 시간 후에 배를 타야 합니다”라는 그의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김 목사 부부와 브라질 현지인 사역자 30여명이 마나우스 항구에 정박한 작은 배에 올랐고 기자도 그 뒤를 따랐다. 항구에서 조금 멀어지나 싶었는데 스마트폰에는 ‘신호 없음’이라는 사인이 떴다. 목적지는 인구 1만9000명 규모의 타파우아. 도시라 불리지만 강과 숲 사이에 깃든 작은 마을에 가까운 곳이라고 했다.

배는 남아메리카 대륙을 동서로 6400㎞ 넘게 가로지르는 아마존강의 지류인 푸르스강을 따라 21시간을 달렸다. 푸르스강은 해가 기울수록 금빛에서 붉은빛으로 변했다.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한 가운데서 본 풍경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양옆으로 지나가는 열대 밀림은 배를 집어삼킬 듯 울창했고 나무는 소리 없이 강물을 머금었다가 다시 뿜어내기를 반복했다.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웅크려 자다 깨기를 몇 차례. 긴 시간 내내 140년 전 조선으로 향했던 선교사들의 마음이 떠올랐다.

오후 9시가 돼 도착한 선착장엔 수백 명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이 어두웠지만 포루투갈어로 ‘벵-빈두스 아 따파우아(Bem-Vindos A Tapau)’라고 쓰인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타파우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뜻인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뼉을 치고 손을 흔들며 일행을 환영했다.

기자를 이곳으로 이끈 김 목사는 파라과이에서 자란 한인 1.5세다. 20대 때 파라과이에서 신학을 마친 뒤 무작정 인디오 선교를 하겠다며 브라질 중서부 마토그로소 인디오 마을로 들어갔다. “죽으면 죽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주민들이 저를 따르자 하루는 추장이 칼을 든 인디오 청년 일곱 명을 보내 저를 막아섰어요.”

그날 ‘다시 오면 죽이겠다’는 협박과 함께 추방당했지만 김 목사는 다시 마을로 들어갔다고 했다. 끈질긴 사역 끝에 교회는 살아남았다. 추장이 물러나고 교인 중에서 새 추장이 나왔다. “그때 세운 교회에서 지금도 예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말을 하는 김 목사이 표정에서 뿌듯함이 묻어났다.

빅토리아교회 전경.

이후 교단 지시로 인디오 선교를 접고 이스피리투산투주 빅토리아에 교회를 세웠다. 뒤이어 브라질 전역에 지교회를 세우고 현지 사역자를 파송했다. 지금까지 그가 파송한 목회자만 80명, 세운 교회는 50곳이 넘는다. 그중 북부 파라고미나스 지교회는 주일마다 2000여명이 모이는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교회는 골목을 바꿨다. 마약과 폭력이 들끓던 동네가 달라진 것이다. 그의 제자인 클레오마 다 실바(55) 마나우스순복음교회 목사는 “몇 해 전만 해도 밤마다 시신이 널려 있었는데 교회가 세워지고 골목마다 기도하는 소리가 가득했고 마약상이 떠났다”고 전했다.

밀림 한가운데에 있는 타파우아에도 변화는 이어졌다. 교회는 청소년들이 마약 대신 축구공을 잡게 하려고 체육관을 열었다. 수영장과 비치 코트도 세울 예정이다. 타파우아순복음교회의 카를루스 밀통 에반젤리스타 지 카스트로(61) 목사는 “아이들이 체육관에서 땀 흘리고 노래하는 모습이 우리의 희망”이라며 “교회가 있기에 아이들이 다른 삶을 꿈꾼다”고 말했다.

김용철 목사 아내 이정숙 사모
“김선교사 형제 이민자로 부름 받은 건 하나님 계획”
이정숙 사모가 최근 브라질 아마조나스주 타파우아순복음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브라질 아마존 깊숙한 곳 타파우아순복음교회에서 최근 열린 성령 집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정숙(66) 사모가 사람들 앞에 섰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송가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가 한국어로 흘러나왔다. 모국어 찬양이 반가운 기자와 달리 회중들은 낯선 한국어에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후렴에서 이 사모가 가사를 포르투갈어로 바꿔 부르자 800여명의 브라질 성도들이 손뼉을 치고 손을 들며 함께 따라 불렀다.

찬양이 끝나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김용철(69) 브라질 빅토리아순복음교회 목사의 아내인 이 사모는 40년 전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됐다고 했다. 편지 몇 통 주고받은 뒤 상파울루에서 처음 만났고 18일 만에 결혼했다. 이 사모는 “목회자 사모가 되는 게 꿈이어서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결혼했다”고 했다.

포르투갈어 한마디 못하던 새댁의 시련은 그때부터였다. “예배에 앉아 있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니 은혜를 못 받고 눈물만 흘렸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답답함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고향의 지인이 보내준 QT 교재가 돌파구였다. 이 사모는 “QT책을 보며 조용히 성경 읽고 삶에 적용한 덕분에 혼자서도 말씀과 기도로 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 사모는 “신앙도 결국 언어로 전해진다”며 “김 선교사 형제가 이민자로 부름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복음은 언어와 분리될 수 없다는 얘기였다. 형제가 파라과이로 향한 건 각각 11살과 9살 때였다. 먼저 파라과이로 간 어머니를 따라 어린 형제 둘이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70일 넘게 태평양을 건넜다고 했다.

이민 사회의 중심이던 교회는 형제에게 학교이자 놀이터가 됐다. 그곳에서 예수를 만났고 포르투갈어를 무기로 삼아 선교사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사모는 “낯선 땅에서 소수자로 살아온 형제의 처지가 같은 소수자인 인디오를 이해하는 데도 큰 힘이 됐다”며 “140년 전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성경과 우리 문화 연구에 힘썼던 이유도 새삼 깨닫는다”고 전했다.

타파우아(브라질)=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