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백 마디 말보다 소중한 단 한 번의 포옹’(SBS) ‘다큐 3일’(KBS1) ‘신세계’(MBN) ‘교육위원회’(JTBC) ‘종교와 인생(KBS 라디오)’ ‘부부수업 파뿌리’(MBN)….
2006년 귀국하자마자 방송국 출연 요청이 쏟아졌다. 기독 언론이 아닌 일반 언론에서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8년간 미국에서 사역했고 한국에서는 방학 중 잠깐 활동한 것이 전부였다. 내가 한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이제 막 한국 사역을 시작한 나에게 날개를 달아준, 하나님의 귀국 선물이었다.
초기에는 카메라 앞에만 서면 울렁증이 심했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방송이 나가고 나면 큰 반향이 일었다. 세상적 가치와 맞서 복음적 가치를 전하는 데 방송만큼 효과적인 통로는 없었다. 방송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 사역이었다. 방송 출연이 잦아지면서 울렁증도 점차 사라졌다. 이후 ‘4인 4색’(CTS) ‘내가 매일 기쁘게’(CTS) 등 기독 언론에서도 방송 사역을 이어갔다.
하나님은 더 큰 선물을 준비하고 계셨다. 2007년 EBS에서 연락이 왔다. ‘다큐 여자’ 시리즈의 마지막 주인공으로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듬해 ‘향숙씨의 오 해피데이’라는 제목으로 3부작이 방영될 예정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일흔이 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되신 어머니는 아버지와 지냈던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랬던 어머니가 웬일인지 고집을 꺾고 잠시 우리 집으로 오셨을 때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화단의 장식용 돌멩이 다섯 개를 주웠다. 눈썰미 좋은 PD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어머니, 뭐 하시려고요.” “공기놀이 좀 하려고.”
촬영팀은 엄마와 딸이 공기놀이하는 모습을 담고 싶어했다. 나는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어머니께 제안했다. “엄마, 우리 내기해요! 엄마가 이기면 내가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내가 이기면 엄마가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지금까지 딸한테 사랑한다고 말한 적 한 번도 한 적 없잖아요.”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사실이었다. 나는 이 말을 꼭 듣고 싶었다. 아니 이 말을 꼭 들려드리고 싶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가장 후회했던 것이 바로 이 말 한마디였다. 너무 늦게 고백했기 때문이다. “향숙아, 나도 너를 사랑한다.” 이 말을 나는 아버지에게서 듣지 못했다.
엄마와의 내기서 내가 이겼다. 어머니는 쑥스러워하시면서도 깔깔대고 웃으며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향숙아, 사랑한다.” 나도 어머니를 꼭 안고 말했다. “엄마, 사랑해요.”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이었다. 어머니는 석 달을 머무신 후 집으로 가셨고 넉 달 후 세상을 떠나셨다. 방송이 모녀에게 작별인사를 선물했다. 지금도 엄마가 그립거나 삶이 버거울 때면 그 영상을 꺼내 본다. 보고 또 봐도,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혹자는 가족을 뜻하는 영어 ‘Family’엔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아빠 엄마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말한다. 가정사역은 바로 이 말을 더 늦기 전에 가족들에게 전하게 하는 일이다. 이 고백으로 용서가 완성되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