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튼동’의 리더십을 배워라

입력 2025-07-08 00:38

유명세 대신 실력 따라 등용하는
롯데 김태형 감독 리더십 돋보여

현대차 도약과 현대그룹 몰락
SK하이닉스의 약진 등 교훈

이재명정부의 성패도
포용적 인재등용·정책에 달려

요즘 프로야구 열기가 뜨겁다. 만년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한화이글스가 선두를 달리는가 하면 봄에만 잘해 ‘봄데’로 불리던 롯데가 상위권 다툼을 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프로야구 출범 원년 첫 경기에서 끝내기 만루홈런을 친 옛 MBC 청룡 이종도와 군산상고 조계현에게 꽂혀 팬레터를 보내고, 친구들과 야구하러 다니던 학창시절 추억을 소환한다.

‘이대호와 여덟 난쟁이’로 불릴 정도로 이대호에게 의존하던 롯데가 이대호가 은퇴한 뒤에도, 강민호와 손아섭 등 주전 선수들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했는데도 오히려 잘하고 있다. 비결은 ‘튼동님’(커튼 뒤의 감독님) 김태형 감독의 리더십 덕분이다. 그는 이름 있는 선수라고 1군 라인업을 고집하지 않는다. 못하면 가차 없이 1군에서 빼서 2군으로 보낸다. 대신 가능성 있는 신진 선수들을 과감하게 1군에 데뷔시킨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갓 입단한 박재엽이 데뷔 3타석 만에 3점 홈런을 치고 입단 후 4년 동안 4차례 1군에 등판했던 좌완 투수 홍민기는 최고 시속 155㎞의 괴력을 보여준다. 누구나 실력만 있으면 믿고 등용하는 김 감독이다보니 1대 14로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15대 15까지 따라붙고 베테랑과 신진 선수들이 서로 경쟁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고 있다. 롯데 팬들은 ‘튼동님의 리더십’에 열광하고 있다.

기업을 운영하거나 국정을 운영하는 데도 인사가 만사다. 능력 있는 인재를 골라 쓰는 안목과 믿고 맡기는 리더십이 성패를 좌우한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기업 부침이 활발했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정신으로 기업을 일궜던 1세대 창업주 시대를 지나 2, 3세 경영인들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흥망성쇠가 달라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재계 1위였던 현대는 정주영 창업주 이후 정몽구·정몽헌 형제의 난과 계열분리를 거치면서 똑똑한 오너와 가신을 둔 현대그룹보다 어리숙한 듯 보이는 오너지만 똑똑한 참모를 둔 현대차그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외환위기 때 김대중정부의 빅딜 정책으로 현대전자는 LG반도체를 떠안았지만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채권단 손에 넘어갔고 다시 SK그룹으로 넘어가 SK하이닉스로 거듭났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모두가 주저할 때 인공지능(AI)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반도체(HBM)를 개발, 시장을 선점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D램 시장에서 1위를 하며 30여년간 아성을 지켜온 삼성전자를 제쳤다.

측근에 둘러싸여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살아있는 권력자’ 주변에는 감언이설로 환심을 사려는 이들이 넘쳐난다. 쓴소리나 비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옥석을 가려내고 고언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성공할 수 있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주력 산업은 경쟁국에 뒤처지고 미래 산업도 쫓아가기 바쁜 위기 상황에서 이재명정부의 성공 여부도 내편 네편을 떠나 어떤 인재를 쓰고 어떤 정책을 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49.4%의 지지 세력만 바라보고 정책을 펴선 미래가 없다. 지금은 보복 특검으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갈 것인지, 위기에서 도약할 것인지 중차대한 시기다. 입법·행정·사법권력까지 장악한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정부인 만큼 경제 살리기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경제장관에 기업인 출신 3명을 스카우트하거나 AI미래기획수석을 임명하고 전임 정권의 장관을 유임하는 파격 인사는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19개 정부 부처 중 여당 의원 8명의 장관직 임명이나 기이한 배추 투자나 이해충돌 의혹이 있는 태양광 사업 투자, 편법 증여 등으로 논란이 있는 올드보이들의 귀환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와 빌 레지어는 ‘좋은 리더를 넘어 위대한 리더로’에서 “영속적인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한 최우선 지표는 버스의 주요 좌석이 올바른 인재로 채워진 비율”이라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라”고 조언한다. 밉보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사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 몇 명을 주변에 둬서 리더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운영이나 기업경영에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