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시대, 데이터로 길을 내다

입력 2025-07-08 00:32

슈퍼히어로 영화 속 인공지능(AI) 비서 ‘자비스’가 처음부터 완벽했을 리 없다. 그는 토니 스타크가 쏟아붓는 방대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학습하며 비로소 ‘똑똑한 조력자’가 됐다. 현실에서도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디지털 트윈 같은 최첨단 기술이 빛을 내려면 연료 격인 데이터가 충분히, 그리고 안전하게 흘러야 한다. 초거대 AI가 일상이 된 시대, 정부가 AI 3대 강국을 국정 어젠다로 내건 이유도 분명하다. AI의 성능과 디지털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연료가 바로 양질의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원유라 불리는 데이터는 산업 간 경계를 허물고, 국민의 일상을 새롭게 설계한다. 결국 누가 더 깨끗하고 풍부한 데이터를 손에 넣느냐가 국가와 기업의 디지털 경쟁력을 좌우한다.

그러나 국토교통 분야에서는 오랫동안 기관별 칸막이, 상이한 법령, 민감정보 처리 부담 때문에 데이터가 제각각 쌓여 있었다. 도로는 이어져도 데이터는 끊어진 셈이었다. 한국도로공사는 이 병목을 풀기 위해 2020년 ‘국가 교통데이터 오픈마켓’을 열어 공공 및 민간데이터 212종을 개방했고, 같은 해 가명정보를 결합·분석할 수 있는 ‘결합전문기관’ 지위를 획득했다. 여기에 2023년 ‘데이터안심구역’, 올해 ‘개인정보안심구역’까지 구축하면서 수집, 가공, 결합, 분석, 거래까지 한 기관 내에서 모두 가능한 체계를 국내 처음 구축했다.

이 일련의 생태계를 ‘데이터 고속도로’라 부른다. 이는 복잡한 기술 개념이 아니다. 고속도로가 전국 방방곡곡을 이어 사람과 물류의 흐름을 돕듯 데이터 고속도로 역시 각 기관과 기업, 국민이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쉽게 찾고 안전하게 활용하도록 연결한다.

데이터가 모이면서 가치도 커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도로공사는 2022년부터 국토교통부와 함께 ‘국토교통 데이터 활용 경진대회’를 열어 매년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국 94개 팀이 참가했고, 국토부 장관상(대상)을 받은 ‘바로팀’은 건축물 오픈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를 활용해 부동산 매물 진단·관리와 상담을 한 번에 제공하는 챗봇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런 경진대회를 통해 축적된 실험적 서비스들이 고속도로·철도·공항 데이터를 결합한 스타트업 모델로 성장하면서 데이터 고속도로의 가능성을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도록 돕고 있다.

도로공사는 물리적 길을 넘어 ‘데이터가 흐르는 길’을 열고자 한다. 실시간 AI 분석으로 사고와 정체를 제로로 줄이는 지능형 도로, 교통·물류·금융·에너지 데이터를 융합한 새로운 생활 서비스, 스타트업·학계와 손잡은 개방형 연구개발(R&D) 생태계가 청사진이다. 데이터는 혼자 쌓아두면 댐이지만, 함께 흘려보내면 고속도로가 된다. 정부·지자체·민간이 안심하고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될 때 누구나 자비스처럼 똑똑한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디지털 대한민국은 더 멀리 달릴 것이다.

류종득 한국도로공사 디지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