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사각 고위험군, 10여년 만에 신약 나왔지만 약값이 장벽

입력 2025-07-08 00:08 수정 2025-07-08 00:08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은 중증으로 진행되면 24시간 산소 요법만이 유일하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이런 고위험군 환자들에게 최근 기존과 다른 개념의 생물학적 의약품이 허가돼 치료에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게티이미지뱅크

흡연·대기오염으로 폐조직 손상
폐기능 50% 손실될 때까지
증상 거의없어 초기 진단 어려움

단 한번 '급성 악화'로 15% 사망
1년간 1회 이상 중증 악화 경험
국내 고위험군만 9만여명 추산

근본 원인인 염증조절 초점 맞춘
생물학적 치료제 국내 처음 승인
건보 적용 안돼 월 비용 150만

흡연, 대기오염 등으로 폐 조직이 망가지고 숨 쉬기조차 힘들어져 결국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의 국민 인지율 제고와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 국회와 전문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COPD는 전 세계 사망 원인 3위이고 폐암만큼이나 질병 부담이 크다. 특히 '급성 악화'를 반복적으로 겪는 중증 환자들은 동반 질환이나 사망 위험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고위험군 환자들의 절반 이상은 현재 최상의 치료 약제로도 잘 듣지 않아 생명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인다.

그런데 최근 이런 고위험 COPD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생겼다. 기존과는 다른 개념의 ‘생물학적 치료제’가 국내에 처음 허가된 것이다. 이처럼 10여년 만에 COPD 신약이 등장했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월 150만원의 약값이 치료에 장벽이 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COPD 환자 10명 중 9명은 소득이 적은 60세 이상이며 연령이 증가할수록, 또 저소득층에서 유병률이 높다.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초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히는 만큼 향후 COPD 환자 급증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COPD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고 특히 중증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는 지난달 말 국회에서 ‘어르신의 숨 쉴 궐리’를 보장하기 위한 COPD 정책 개선 토론회를 열고 이를 공론화했다.

매우 낮은 인지율, 치료율


7일 질병관리청과 학회 등에 따르면 COPD는 흡연이나 실내외 대기오염, 호흡기 감염 등으로 만성 염증이 반복적으로 일어나 폐 조직이 파괴되고 염증으로 인해 기도가 좁아지는 병이다. 중증으로 진행되면 호흡 곤란, 만성 기침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고 목숨을 잃을 수 있다.

2023년 기준 국내 40세 이상의 COPD 유병률은 약 12.7%(남성 18.6%, 여성 7.1%)이지만 다른 만성질환과 비교해 질병 인지율은 2.3%, 치료율은 1.2%로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그만큼 ‘숨어있는 환자’가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유광하 결핵·호흡기학회 이사장은 “그나마도 50대 이상과 달리 40대는 거의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학회는 국내에 진단된 COPD 환자를 20만명 안팎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진단된 환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3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최준영 가톨릭의대 인천성모병원 호홉기내과 교수는 “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은 데다 폐 기능 검사의 부족, 초기 증상의 경미함 등으로 진단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또 개원가 의사들에 대한 교육 부족, 약제에 대한 까다로운 급여 기준 등은 치료의 부족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COPD는 폐 기능이 50% 이상 손실될 때까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초기 진단이 매우 어렵다. 또 한 번 손상된 폐는 회복되지 않는 만큼 조기 진단과 병의 악화를 막는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COPD는 더구나 단 한 번의 ‘급성 악화’만으로 환자의 15%가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된다. 급성 악화는 환자의 호흡기 증상이 치료 약제를 추가해야 할 정도로 급격히 나빠지는 상태다. 심한 경우 응급실 방문이나 입원이 필요하다.

선행 연구에서 급성 악화를 겪지 않은 환자에 비해 급성 악화를 3번 이상 경험한 환자의 사망률은 4.3배 높았고 중증 악화를 겪은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 대비 심혈관계 사건 발생 가능성이 6배 이상 높은 걸로 확인됐다. 중증이 되면 24시간 산소 공급 치료만이 유일한 생명줄이다. 이런 이유로 세계COPD기구와 한국의 결핵·호흡기학회는 진료 지침에서 ‘한 번의 급성 악화 예방’을 궁극적 치료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9만 고위험군 새 옵션 등장했지만…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지난 1년간 두 번 이상의 중등도(중간 정도) 악화 또는 1회 이상의 중증 악화를 경험한 환자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하는데, 국내에는 9만여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고위험군은 혈액 속 백혈구 일종인 호산구 수치(300cells/㎕ 기준)에 따라 2가지 혹은 3가지 기관지 확장 및 증상 완화 약물을 병용하는 게 표준 치료법이다. 문제는 3가지 약제를 쓰는 최대 표준 요법을 받는 환자의 약 60%가 증상이 충분히 조절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기존 치료제와는 달리 질환의 근본 원인인 ‘염증 조절’에 초점을 맞춘 생물의약품인 두필루맙이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았다. 10년 넘게 신약이 없었던 COPD 영역에 새로운 치료 옵션이 등장한 것이다. 국내외 지침은 호산구 수치가 300cells/㎕을 초과한 ‘급성 악화’ 고위험군 환자에게 이 치료제의 사용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이진국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이들 환자는 현행 최대의 치료에도 반복적인 악화가 발생해 삶의 질이 낮고 예후가 가장 나쁜 고위험군”이라면서 “기존 치료제로 조절되지 않을 경우 현재로선 생물의약품 사용이 치료의 유일한 돌파구”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급여가 되지 않아 환자들의 접근성이 낮은 실정이다. 이 약은 월 2회 주사에 150만원의 비용이 든다.

송재찬 대한노인회 사무총장은 “앞으로 흡연과 열악한 환경 등으로 COPD 유병률이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예방 중심의 조기 진단 체계 구축과 함께 중증 악화에 대비한 치료 접근성 개선과 건강보험 지원의 우선순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그간 미충족 수요가 높았던 COPD에 새로운 약제인 생물의약품이 나온 것이 매우 고무적인 상황으로, 신속한 급여가 진행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일본 독일 등 다수 국가에서 COPD에 해당 약의 건강보험이 지원되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