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오랫동안 인류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분투해왔다. 백신과 항생제, 건강검진과 생활습관 교정 등이 그 결과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존 예방의학의 한계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나이 들면 우리 몸속 세포와 조직은 자연스럽게 기능을 잃는다. 이 퇴행성 변화가 병의 씨앗이 된다. 지금까지의 예방의학은 이 근본적 문제에 깊이 손을 대지 못했다.
심혈관질환을 예로 들어보자. 고혈압과 고지혈증, 흡연은 잘 알려진 위험 요인이다. 이를 조절하면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위험이 줄어드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심혈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약해진다. 혈관 내피세포도 나이가 들면 점차 손상되므로 작은 염증이 쌓여 동맥경화로 이어진다. 운동과 약물로 속도를 늦출 순 있지만 손상된 내피세포를 복원할 방법은 아직 요원하다.
관절염도 마찬가지다. 관절의 연골은 나이가 들수록 닳아 없어지며 결국 관절염으로 이어진다. 생활습관 개선이나 소염제, 물리치료로 통증을 완화할 순 있지만 닳은 연골을 되돌릴 방법은 제한적이다. 신경계 퇴행성 질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은 뇌 속 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면서 발병한다. 이를 막는 기존 예방의학적 접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재생의학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재생의학은 손상된 세포나 조직을 복원하는 학문이다. 애초 손상된 부위를 되살리려는 치료적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최근엔 질병 증상이 드러나기 전 단계에서 세포와 조직의 기능을 유지하려는 예방적 시도로 발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연구에서도 이런 흐름이 나타난다. 미국 하버드대 줄기세포연구소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활용해 손상된 혈관 내피세포를 복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2019년엔 실험 모델에서 동맥경화의 진행을 억제할 가능성도 보고했다. 줄기세포가 치료제에 그치지 않고 심혈관계 질환 예방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관절염 조기 치료에 줄기세포를 적용하는 동물실험 결과를 2021년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는 초기 연골 손상 부위에 중간엽 줄기세포를 주입하고 연골 재생을 유도해 퇴행성 관절염의 진행을 억제하는 결과를 얻었다. 연골 퇴행의 초기 단계에서 재생의학이 개입할 경우 병의 발생 자체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결과였다.
일본 교토대 iPS 세포 연구소는 파킨슨병의 예방적 치료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2018년부터 진행한 임상시험에서는 환자의 피부세포에서 유도한 줄기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해 이식했다. 이식 후 관찰해보니 신경 기능 저하 속도가 늦춰지는 경향을 보였다. 파킨슨병 같은 난치성 질환에서 재생의학의 질병 예방적 개입 가능성을 보여준다.
스위스 취리히대 재생의학센터는 노화에 따른 근육 조직 퇴행을 예방하기 위해 줄기세포 활성화 치료를 연구 중이다. 2022년 발표한 연구에서는 노화 근육의 재생능력을 높이기 위해 근육 줄기세포를 자극한 결과 근육 위축이 억제되고 기능 유지가 가능했다는 실험 결과가 조심스럽게 보고됐다.
이 모든 연구에는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병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전에 세포와 조직의 기능을 유지하거나 되돌리려 한 시도라는 점이다. 기존 예방의학이 미처 다가가지 못했던 지점이다.
물론 재생의학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무른다는 점도 분명하다. 안전성과 장기적 효과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치료 표준화나 비용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재생의학은 단순한 치료 도구에서 벗어나 예방의학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 몸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약해진다. 그 약해지는 순간을 마냥 지켜볼 게 아니라 과학의 힘으로 되돌릴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재생의학은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유력 후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지혜와 능력으로 생명을 보존하고 치유하는 건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사는 우리의 소명이기도 하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