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7월 충남 보령 앞바다에 상륙한 독일 선교사 칼 귀츨라프(1803~1851)는 20여일간 보령 일대에 머물며 전도 문서와 성경은 물론 감자 씨앗, 감기약, 한글 주기도문까지 건네며 주민들과 소통했다. 귀츨라프 선교사는 한글을 서양 학계에 처음 소개하는 등 복음을 삶으로 전한 ‘총체적 선교’의 원형을 제시했다.
㈔보령기독교역사문화선교사업회(이사장 최태순 목사)는 5일 충남 보령머드테마파크 컨벤션관에서 ‘보령 도서선교 역사 및 관광 연구를 위한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귀츨라프의 보령 방문 193주년을 기념해 그의 선교 활동을 신학적·역사적·사회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학술 연구가 지역문화 발전으로 이어지는 의미를 모색한 자리였다.
귀츨라프가 1832년 조선에 체류했던 실제 장소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학계에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해 왔다. 이번 세미나에서 기독교한국루터회 칼 귀츨라프 연구위원장인 최태성 박사는 주제강연 ‘칼 귀츨라프의 보령 도서선교 연구’ 발표를 통해 “귀츨라프가 탄 암허스트호가 정박했던 ‘간갱’이라는 항구가 원산도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귀츨라프의 항해 일지 내용을 제시하며 “‘암허스트호는 조선 도선사의 안내를 받으며 안전한 정박지가 있고 고관들을 만날 수 있으며 무역 문제를 조정하고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간갱’이라 불리는 만으로 이동했다’고 기록됐다. 조선에는 넓고 안전한 항구들이 있는데 암허스트호가 정박했던 간갱은 1급 항구였다고 한다”며 “이 간갱이 바로 원산도 또는 고대도 해역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도 육지와 가까우며 조선 관리들과의 접촉이 가능했던 원산도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라고 강조했다.
최 박사는 귀츨라프의 감자 보급과 의료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구 밀도와 공동체 형성 여부 등을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원산도는 어업과 농업이 공존하며 실질적인 마을이 형성돼 있었으나 고대도는 문헌상 거주 흔적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장로회신학대 역사신학 교수인 최영근 박사는 ‘귀츨라프의 조선 내항과 선교 활동의 교회사적 의미에 관한 고찰’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귀츨라프의 조선 선교 활동을 다층적으로 조명했다. 최 박사는 “감자 보급, 의료 활동, 성경 번역 등 다방면의 활동은 말씀과 삶을 함께 전한 총체적 선교의 실현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귀츨라프의 선교 보고서에는 조선을 ‘문명화해야 할 미개한 땅’으로 보는 19세기 서양 중심주의적 시선이 담겨 있었다”고 짚었다.
사업회는 매년 학술세미나 개최, 귀츨라프 관련 홍보물 및 소설 발간 등 다채로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태순 사업회 이사장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선교 순례길’ 조성을 통해 지역 관광과 신앙 유산을 잇는 구체적 실천에 나설 계획”이라고 전했다.
보령=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