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으로 고백 돼야 할 분이십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하나님을 향해 “나의 사랑이시요”라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친밀한 표현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주님이나 왕, 주권자라 부르기 전에 먼저 사랑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있어 사랑의 대상이었고 그 사랑이 그의 인생 전체를 이끌어가는 동력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이기 전 예배자였고 용사이기 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신앙의 중심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면 왜 고난이 따를까요.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고난과 핍박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사울 왕의 시기로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고 수많은 전쟁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지 의아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진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가짜를 좋아합니다. 포장된 것이나 화려한 것, 위선적인 걸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하고 진실하며 세상의 가짜와 섞일 수 없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사건도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한 골리앗에게 거룩한 분노를 느꼈고 믿음으로 싸워 이겼습니다. 이 승리는 인간의 기술이나 무기가 아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의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그 승리는 동시에 사울의 시기와 박해를 불러왔습니다. 세상은 진짜를 싫어합니다. 진짜가 등장하면 가짜는 들통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고난 속에서도 보호받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이 고백은 단순한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다윗이 실제로 체험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증거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님께 나아간 자를 하나님은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사랑 때문에 생긴 고난은 하나님께서 직접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할 때는 행복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처음엔 웃으며 약속해도 시간이 흐르면 말도, 마음도 달라집니다. 사람의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고난이나 실패, 죄 속에서도 우리를 붙잡고 놓지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죽음을 이기는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은 나사로와 그의 자매 마르다, 마리아를 사랑하셨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는 기별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즉시 가지 않으시고 이틀을 더 머무십니다.
사랑하시면서 왜 곧장 가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더 큰 사랑, 죽음을 이기는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결국 나사로를 무덤에서 다시 살리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소망을 잃었지만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도 사랑으로 생명을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고….” 하나님의 사랑은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정일웅 목사 (총신대 전 총장)
◇정일웅 목사는 독일 본대학 신학박사이며 총신대와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및 제4대 총장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웨이크신학원 석좌교수와 국제교회논평회 논설 고문,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