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지구촌 ‘정글의 법칙’

입력 2025-07-07 00:35

국제 정세가 극도로 혼란한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 관세전쟁이 전 세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곧 끝날 것으로 예상되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확대일로에 있던 이스라엘·이란 전쟁은 다른 국가의 충돌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함으로써 일단 강요된 휴전에 들어갔다.

이제 세계는 30여년에 걸친 평화의 시대를 마감하고 강대국의 권력 장치가 지배하는 ‘지정학의 귀환’ 시대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그동안 외적 평화 시대에 가려져 있던 다양한 요소들이 일거에 국제무대에 충돌의 형태로 등장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이데올로기화나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국제 공급망 재편 시도,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갈등은 물론이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이스라엘과 하마스, 이란 등의 군사 충돌과 함께 중국·인도의 해묵은 국경 분쟁도 직접적인 군사 충돌로 번지는 상황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은 표면적으로는 중동 패권 전쟁으로 보이지만 배후에 미국, 러시아, 중국이 포진하는 미래 세계의 권력 각축장이었다. 미국의 최첨단 군사력이 동원된 대이란 공습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미국식 ‘힘을 통한 평화’와 ‘범접할 수 없는 억지력 복원’의 시험대였으며,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분명한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 관계가 다시 한번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으로 대표되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대로 돌아왔음을 웅변하고 있다.

국제정치에 있어 정글의 법칙은 국가 간 관계가 강자의 실력과 이익이 중심이 되고, 그렇지 못한 국가들은 강자의 논리에 따라야 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국력이 발언권을 결정하고, 강대국들은 군사 및 경제 분야의 우세를 동원해 ‘이익 우선’ 관점에서 국제 사무를 재단한다. 전에도 이상적이지 못했던 유엔 중심의 국제 질서는 향후 그 효용성을 발휘하기가 더욱 어렵게 됐다. 게다가 전통 국제법에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군사 행동은 가히 개인 외교라 불릴 만한 선별적 고립·개입주의의 극단적 표현이기도 하다.

당연히 각국이 자국 이익을 구현하는 형태도 자기 보호주의적이다.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는 세계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무장한 실력이 도덕 가치를 압도한다.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도덕을 앞세운 이상주의적 평화보다 현실주의적 힘이 더욱 세계 질서를 형량하는 기준이 된다는 의미다. 각국 경쟁의 형태가 전통적 군사력에 다양한 비군사적 조치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전’이나 어떠한 구분이나 제한이 없는 초한전(超限戰) 성격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준엄한 시기에 출범한 한국 새 정부는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중국 등과의 관계도 실용적으로 풀어보겠다는 실용 외교를 천명했다. 그러나 미국과 관세 협상이 순탄치 않은 가운데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방한도 취소되면서 한·미 정상의 만남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중국은 9월 3일 전승절 행사에 이재명 대통령 초청을 타진하는 중이다. 게다가 시진핑 체제의 권력 이상설이 감지되고, 북핵 위협은 여전하다. 더욱 커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목소리와 중국의 정치 변동설, 러시아와 유럽, 중동 및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움직임도 불확실 요인이다.

한국은 탄핵 정국이라는 극도의 혼란을 스스로 극복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상 국가다. 그렇지만 혼란한 정글의 한복판에서 실체 없는 도덕과 평화만을 외칠 수는 없는 일이다.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에 조응하는 사안별·상황별 대비책 마련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할 때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HK+국가전략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