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식품·화학 등 많은 산업서 활용
해양생물 생존 좌우하는 중요 요소
온도와 함께 해양 운동 일으키기도
식탁 위 소금에 바다의 고마움 느껴
해양생물 생존 좌우하는 중요 요소
온도와 함께 해양 운동 일으키기도
식탁 위 소금에 바다의 고마움 느껴
바다가 인간 생활에 끼친 수많은 영향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를 꼽자면 단연 소금이다. 소금은 수천년 동안 인류 문명과 함께해온 중요한 자원이다. 고대에는 음식 조리와 보존뿐 아니라 교역과 세금, 나아가 화폐의 기능까지 담당했다. 오늘날에도 소금은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스며 있다. 요리와 식품은 물론 화학산업과 제설, 의약품과 세제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도 소금은 빠질 수 없는 존재다. 또한 소금은 순수함, 보호, 정화와 같은 상징적 의미로도 오랜 시간 우리의 문화와 관습 속에 자리해 왔다. 소금은 단순한 결정체를 넘어 인간의 삶의 질을 지탱해 주는 바다의 선물이다.
소금은 지금의 바다뿐만 아니라 이미 사라진 고대 바다에서도 비롯된다. 대표적인 형태는 천일염과 암염(돌소금)이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드는 반면 암염은 고대 바다에서 기원한 땅속 소금층에서 얻어진다. 현재 전 세계 소금 생산량의 약 40%는 천일염, 나머지 60%는 소금 광산의 암염 채굴과 염수 생산을 통하여 이뤄진다. 현재 바다보다 과거 바다에서 유래한 소금을 더 많이 이용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일염만 생산되는데 법적으로는 광물로 취급되는 면이 있다. 천일염이 광물에서 식품으로 전환된 것은 2008년 식품위생법 개정 이후다. 그전까지는 배추를 절이거나 장을 담그는 용도로는 사용됐지만, 직접 섭취는 금지됐다는 뜻이다. 현재 통계청의 ‘한국표준산업분류’에는 천일염 생산이 수산업이 아닌 광업으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천일염은 햇볕과 바람이 빚어낸 엄연한 바다의 선물이다.
바닷물 속 소금 성분(염분)은 주로 육지의 암석이 빗물에 침식돼 바다로 흘러간 결과다. 이러한 과정은 수천만년에서 1억년 이상 긴 시간에 걸쳐 지속됐고, 오늘날 바다는 안정적인 염분을 유지하고 있다. 바다로 유입되는 소금의 양과 해저에 침전되는 소금의 양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현재 바닷물 1ℓ에는 약 35g의 염류가 녹아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1인당 하루 소금 섭취량인 5g은 바닷물 한 컵이면 충분한 농도다. 만약 지구의 바닷물이 모두 증발한다면, 남는 소금으로 지구 표면 전체를 약 166m 두께로 덮을 수 있다. 그만큼 바닷속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소금이 녹아 있다.
이처럼 바다가 품은 소금은 암염이라는 지질학적 흔적으로도 남아있다. 암염을 남긴 고대 바다의 대표적인 예로 테티스해를 들 수 있다. 약 2억6000만년 전 페름기 말기부터 유라시아 대륙과 곤드와나 대륙 사이에 존재하던 이 바다는 떨어져 있던 인도 대륙이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하면서 점차 사라졌고, 그 자리에 히말라야 산맥이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고립된 바닷물이 증발하고, 압력에 의해 소금 퇴적물이 압축되어 단단한 소금층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히말라야 소금’으로 알려진 핑크빛 소금은 이 소금층에서 나온 것이다. 테티스해의 마지막 흔적은 현재 지중해에 남아있다. 약 650만년 전 지브롤터 해협이 일시적으로 닫치면서 바다가 고립되고, 증발 과정을 거쳐 최대 두께가 2㎞에 이르는 소금 퇴적층을 남겼다. 미래의 암염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지질학자들은 이를 ‘테티스해의 마지막 유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다에 녹아 눈에 보이지 않는 소금은 미각을 통해 우리와 연결되며, 짠 바다는 단순한 소금의 실체나 맛을 넘어 인간 감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바다의 소금이 눈물과 닿아 있다는 시인들의 표현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는 시 ‘포르투갈의 바다’에서 ‘오, 짠 바다여, 네 소금 중 얼마나 많은 것이 포르투갈의 눈물이던가’라고 썼다. 대항해 시대 탐험과 승리뿐 아니라 이면에 깃든 희생과 슬픔을 바다의 짠맛에 담아낸 표현이다.
한편 바다의 짠맛은 인간의 감정뿐 아니라 해양 생물에게도 생존을 좌우하는 환경 요소다. 많은 해양 생물은 특정 염분 범위에서 살기 때문에 염분이 급격히 변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생존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저염수 쇼크’는 해양 생물이 갑작스러운 염분 저하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폐사에 이르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은 여름철 양쯔강에서 유입된 담수로 인해 제주도 해역의 염분이 낮아지면서 양식장에 피해가 발생한 사례에서 확인된다. 염분은 해양 생태계에 조용히 영향을 미치는 숨은 조절자다.
나아가 염분은 해양 순환 시스템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 중 하나로, 궁극적으로는 기후에까지 관여한다. 해수면 염분 분포는 강우, 증발, 강물 유입, 극지 얼음 상태 등과 밀접히 연관돼 해양 물순환의 지표로 유용하다. 염분은 온도와 함께 바닷물 밀도를 결정하고, 공간적 밀도 차이는 해양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열염순환, 일명 ‘대양 컨베이어 벨트’다. 이 순환은 북대서양 고위도 해역에서 차갑고 염분이 높은 해수가 심해로 가라앉으며 시작돼 지구 전역으로 열을 순환시키는 심층 해류 시스템이다. 보이지 않는 소금의 힘이 지구 기후를 조절하고 있는 셈이다.
소금은 물속에 녹아 있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바다의 짠맛은 감각을 넘어 인간의 삶과 문명, 해양 생태계와 기후 시스템을 지탱하는 복합적인 상징이다. 시인 류시화는 시 ‘소금’에서 이렇게 적었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우리가 식탁 위에 무심코 뿌리는 한 줌의 소금에 바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다의 눈물인 소금이 없다면 우리의 삶도 존재할 수 없다. 소금을 보며 바다의 고마움을 한번쯤 생각해 보자. 소금은 바다가 인간에게 내어준 소중한 선물이다.
이재학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