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사이사이에

입력 2025-07-07 00:34

“요즘 어떻게 지냈어요?” 몇 년 만에 만난 지인이 밝은 얼굴로 질문한다. 잘 지냈다고 대답해도 좋으련만, 내 대답은 “그냥 그렇죠 뭐” 하는 식이다. 지인의 안부를 묻는 내게 지인은 말한다. “저는 제법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나는 그 말이 참으로 듣기 좋아 나도 그런 식으로 대답해볼걸 후회를 한다. “어떻게 지내셨는데요?” 하고 내가 다시 묻자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어제는 구름이 참 예뻐서 바깥에 누워 하늘을 보다가 10분 정도 낮잠을 잤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 그제는 수영장에서 처음으로 자유형을 처음 터득했고요. 며칠 전에는 지난해 죽은 우리집 개가 꿈에 나왔어요. 그녀의 목소리 속에서는 기쁨과 자랑이 묻어나왔다.

그런 식이라면 나의 근황도 견줄 만했다. 오전에는 아주 반가운 연락을 받았고, 어제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묵혀둔 일들을 처리했다. 그제는 내가 보낸 복숭아를 잘 받았다는 친구로부터 감자 한 박스를 받고서 서로 고마움과 농담을 섞어가며 문자를 주고받았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반지를 1년 만에 여름 바지 호주머니에서 발견하고 손가락에 다시 끼웠다. 사이사이에 잠깐씩 등장하는 반가운 일들이 나의 하루를 내내 차분하게 지켜주는 듯했다.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은 일, 걱정이 많은 일, 누군가에게 실망을 하게 된 일, 또 누군가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밖에 없게 된 일 등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와중이었지만, 이런 정도는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바로 이런 뜻에서 나의 근황은 늘 ‘그냥 그렇다’ 정도의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고 여겨왔던 것이다.

행복한 줄 몰라서가 아니라 겨우 그런 정도로 행복하다고 표현한다는 게 행복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은 느낌. 행복하다는 말이 염치없게도 느껴지는 께름직한 마음. 지인은 일상 속에서 내가 누려온 소소한 행복들을 일깨워주고 싶어서 내 앞에 이렇게 나타난 듯했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