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성강은 고려의 대표 관문이자 무역항이었다. 수도 개성과 가까운 예성강에는 중국 사신과 아라비아 상인들을 태운 선박들이 분주하게 드나들었다. 고려가요 ‘예성강곡’에 등장하는 송나라 상인이나 ‘쌍화점’에서 ‘회회아비’로 불리는 이슬람 상인들의 존재는 당시 예성강이 왕성한 국제교류의 통로였다는 걸 말해준다.
13세기 초 인구가 30만~5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개성은 당대 세계적인 대도시였다. 인구 100만명을 자랑한 당나라 장안의 규모에는 못 미쳤지만, 10만명 수준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프랑스 파리보다는 훨씬 큰 도시였다. 이 강을 거슬러 오르던 외국인들이 ‘코리아’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으니, 예성강은 한반도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예성강이 최근 국제적으로 다시 관심을 끌게 된 건 북한의 방사능 오염물질 방류 의혹 때문이다. 북한 최대 우라늄 정련 공장이 있는 황해도 평산에서 흘러나온 폐수가 예성강으로 유입되는 장면이 지난해 10월 위성사진에 포착됐다고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가 보도했다. 평산 정련공장에서 생산된 우라늄 정광은 영변 핵물질 생산시설로 옮겨져 핵무기 제조에 쓰인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예성강이 합류하는 임진강과 한강 하류, 강화도 인근 서해도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원자력안전위원회, 해양수산부, 환경부 3개 기관 합동 조사에 착수한 배경이다. 정부는 한강 하구 등에서 시료를 채취해 우라늄과 세슘 등 오염 여부를 분석하기로 했다. 중국과 일본,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한국 정부의 조사를 예의주시할 게 분명하다. 정부가 2019년 8월에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돼 조사에 나섰으나, 당시에는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 북한의 협조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단독 조사가 얼마나 신뢰할만한 결과를 내놓을지는 의문이다.
향후 남북대화가 이뤄진다면 상호 신뢰 구축 차원에서 북측에 요구할 협력 사업 중 하나로 검토할 만하다.
전석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