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을 콘서트홀에서 듣는다

입력 2025-07-05 00:16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이하 힉엣눙크)은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현악 오케스트라 세종솔로이스츠가 2017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도심형 여름 음악축제다. 라틴어인 ‘힉엣눙크’(Hic et Nunc)는 영어의 ‘히어 앤 나우’(Here and Now), 즉 ‘지금 여기’라는 뜻이다. 매년 축제 이름의 의미에 걸맞게 ‘살아있는 21세기 클래식 음악의 현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오는 8월 22일~9월 5일 서울 예술의전당 등에서 열리는 힉엣눙크는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을 비롯해 38명의 예술가가 참여하는 10개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8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사진)와 세종 솔로이스츠가 함께하는 ‘키메라의 시대: 신인류의 상상적 미래’ 공연이다.

베르베르와 친구 사이인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와 강경원 세종솔로이스츠 총감독의 제안으로 시작된 공연은 8월 초 국내 출간 예정인 베르베르의 신작 ‘키메라의 땅’을 테마로 한국 작곡가 김택수가 작곡한 ‘키메라 모음곡’을 연주한다. 베르베르가 직접 내레이션을 쓴 뒤 무대에서 프랑스어로 낭독할 예정이다. 그가 콘서트홀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화면에 영어와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최근 한국 언론과 화상 인터뷰를 가진 베르베르는 “관객 앞에서 내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며 프로젝트 참여 이유를 밝혔다. 이어 “소설가들의 원조 격인 선사시대 이야기꾼들은 모닥불 옆에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했다. 그런데, 요즘 소설가들은 독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서 늘 아쉬웠다”고 피력했다.

‘키메라의 땅’은 제3차 세계대전 이후 동물과 인간의 유전자가 융합된 신종 생명체 ‘키메라’가 등장하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렸다. 베르베르는 작품에 대해 “현재 인류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런 우려에서 출발해 미래를 상상해 봤다”면서 “겉모습뿐만 아니라 의식 상태를 바꿔 폭력과 두려움의 사이클을 반복하지 않을 ‘신인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어머니가 피아노 교사여서 어릴 적부터 음악을 자주 접했던 베르베르는 피콜로를 직접 연주하는 등 클래식 애호가다. 작품을 집필할 때도 즐겨 듣는다는 그는 ‘키메라의 땅’을 집필할 때는 바흐를 자주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음악은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문학은 번역을 통해 어쩔 수 없이 변형이 일어나지만, 음악은 언어의 장벽이 없기 때문”이라고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김택수가 작곡한 ‘키메라 모음곡’은 총 8악장(40분)으로 구성됐다. 17세기 바로크 시대 모음곡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하이브리드’ 테마에 걸맞게 각각의 악장을 다채로운 색채로 풀어낸다. 공기는 플루트, 물은 기타, 땅은 바이올린으로 표현하는 등 각각의 악기가 종족을 상징하도록 했다. 이 곡을 미리 들어봤다는 베르베르는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있는 영화음악처럼 김택수의 음악은 각각의 시퀀스가 주는 감동을 온전히 전달한다”고 평가했다.

베르베르와 세종솔로이스츠 협연은 서울을 비롯해 대전, 세종 등에서 총 일곱 차례 전국 투어로 이어진다. 공연 외에 출간 기념 사인회 등 국내 팬들과 만남도 예정돼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