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버린 공간에 자연의 시간이 흐른다 그것이 희망이다

입력 2025-07-04 00:08
한때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쇠락의 길을 걸으며 빈집과 빈 공장들이 폐허로 변했다. 버려진 곳에서도 자연은 스스로 회복하고 있다. 사진은 디트로이트에 남아 있는 폐공장들의 모습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스코틀랜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캘 플린은 2년여 동안 ‘지구에서 가장 섬뜩하고 황량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곳은 인간에 점유됐다가 ‘버려진 섬들’이었다. 전쟁이든 자연재해든, 불황이든 이유는 다양했다.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인간의 손길을 벗어나 방치됐다. 어떠한 통제도 없이 자연의 시간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곳에서 자연은 스스로 회복했다. 저자는 그곳에서 희망을 봤다.

스코틀랜드 중부의 웨스트로디언은 1860년대부터 혈암유(셰일 오일) 중요 생산지였다. 60여년 이어지던 전성기가 막을 내리자 채굴과 정제 과정에서 생긴 폐석 더미들은 산처럼 쌓였다. 이 지역 사람들은 ‘더미’, ‘쓰레기터’ 등을 의미하는 옛 노르웨이어에서 유래한 ‘빙(bing)’으로 불렀다. 2004년 생태학자 바브라 하비가 빙의 동식물을 조사하고 내놓은 결과에 모든 사람이 놀랐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는 동안 빙은 야생생물의 밀집지로 변모해 있었기 때문이다. 빙에서 발견된 식물종만 350종이 넘었다. 저자는 “생태계는 자신의 온 존재를 담아 자력으로 한때의 잔해로부터 새 삶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한다.

1940~50년대 미국의 핵실험장으로 사용되던 태평양의 비키니환초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생명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던 곳에 새로운 수중 생태계가 형성됐다. 2017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인간의 간섭이 사라지자 금세 물고기 개체 수가 증가했고 상어 또한 늘어났으며, 산호는 더욱 화려해졌다”고 감탄했다. 저자는 ‘버려진 장소들’은 “다시는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지만 절망적 상황에서도 여전히 남아 존재하는 것이 있음을 상기시킨다”면서 “이는 복원이 아닌 구원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저자의 발길은 미국의 디트로이트로 향한다. 자동차 산업의 상징으로 한때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쇠락의 길을 걸으며 빈집과 빈공장들이 폐허로 변했다. 저자는 그곳에서 잡초와 덩굴이 우거지고 비버와 코요테가 다시 돌아오는 ‘재야생화’의 모습도 목격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희망의 근거들을 발견한다. 디트로이트에는 폐가를 철거하는 조직이 있었고, 폐교 운동장과 놀이터 등 버려진 공간을 정원으로 가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염호(鹽湖) 솔턴호는 기후위기로 암울한 미래를 연상시키는 곳이다. 콜로라도강 제방 붕괴로 캘리포니아 사막 분지가 우연히 호수로 변한 솔턴호는 고급 휴양지로 명성을 떨치던 곳이었다. 하지만 물이 마르면서 염도가 치솟았고, 농지 유출수로 생긴 거대한 녹조로 인해 물고기들은 전멸했다. 그리고 주변은 유령 도시로 변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기후로 인한 사회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영국 컴브리아대 젬 벤델 교수의 디스토피아적 예언이 완성된 곳으로 비친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2006년 솔턴호 일부에 마련한 인공 연못에 멸종위기종인 사막펍피시가 왕성하게 번식하는 것이 확인됐다. 42도가 넘는 뜨거운 물과 바다의 두 배나 되는 염분 속에서도 살아남은 물고기가 있었던 것이다.

긴 여정을 마치고 저자는 친구들에게 그가 관찰한 내용을 들려줬다. 몇몇은 긍정적인 면, 즉 생태계의 놀라운 회복에만 주목하면서 환경을 파괴한 인간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권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버려진 장소의 놀라운 생명력과 그중 몇몇은 생물 다양성 면에서 신중히 관리된 자연보호구역을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개입에 따른 해가 득보다 더 클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우리는 자제하는 법을, 다시 말해 거친 지형에선 고삐를 말에게 넘기듯 지구가 진두에 서도록 물러나야 할 때를 제대로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