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 주는 위로

입력 2025-07-04 03:05

책 ‘부활이 있기에’와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두 매체에서 이승장과 양관식, 두 제주 소년이 말하는 천국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을 잃어버린 슬픔에서 다시 천국으로 걷는 두 사람의 여정은 모두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삶은 대체로 “살면 살아진다”고들 합니다. 아파도, 슬퍼도 우직하게 살아가면 언젠간 좋은 날 올 거라고요. 허나 현실의 우리 삶은 완벽한 복선이 깔린 16부작 드라마가 아니라서 이 말은 때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저 홀로 서게 하는 고독한 위로로 남아버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반면 부활은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완성하는 계획 중 최후의 완벽한 한 획, 화룡점정입니다. 눈 없는 용이 없듯, 부활 없는 하나님 나라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활이 이토록 필연적이므로, 부활은 하나님이 굳게 약속하고 우리가 불안함 없이 모든 것을 다해 매달릴 절대적 위로가 됩니다.

부활이 주는 위로는 삶을 살아지게 하는 데 그치게 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살아지는 것을 넘어 살려냅니다. 나뿐 아니라 내 이웃과 이 세상을 살려내고 마침내는 하나님 나라를 이룹니다. 책은 고린도전서 15장으로 부활을 햇빛 아래 드러난 듯 명징하게 서술합니다. 그저 막연한 위로로서의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이 무엇을 어떻게 살려내고, 부활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지상과 천상이 맞닿는 지점에서 세세하게 풀어냅니다.

책의 서두는 복음과 죽음 사이의 갈등에서 출발합니다. 가장 큰 소망과 가장 큰 절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기이한,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바로 옆에 존재하는 갈등이 비칩니다. 이윽고 1장에서 복음을 초기화하고, 2장에서 죽음을 거슬러 십자가에 닿고 나면 이 갈등을 풀어낼 열쇠가 제시됩니다. 부활이 그렇게 우리에게 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제게 살아간다는 건 복음에 매몰돼 꽃밭에 사는 것도 아니고, 죽음에 목매어 낭떠러지 앞에만 서는 일도 아닙니다. 영원을 꿈꾸지만, 오늘에 모든 것을 걸고 무언가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삶이든 타인의 삶이든, 세상이든 살려내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내 삶의 모습인 듯싶습니다.

부활이 주는 묵직한 소망과 부담이 느껴집니다. 부활이 있기에 사는 것이 두렵지 않고, 부활이 있기에 무거운 짐을 한 번 더 들어 올려 봅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드문 세상입니다. 그 누구도 제 앞가림을 하는 어른이라고 스스로 선뜻 나서기 어렵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여전히 낯설고, 마음 같지 않지만 괜찮습니다. 부활이 있기에.

김광우 전 기독대학인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