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쓴 기도문과 설교에서도
위로와 감동을 받는 사람들
기계가 조합한 텍스트이지만
진심 느끼는 인간 감정은 진짜
다양한 관점과 끝없는 질문
디지털 시대 현대신학의 강점
위로와 감동을 받는 사람들
기계가 조합한 텍스트이지만
진심 느끼는 인간 감정은 진짜
다양한 관점과 끝없는 질문
디지털 시대 현대신학의 강점
이 글은 최초의 바이브 칼럼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즉흥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이브(Vibe)라 한다. 바이브 코딩, 바이브 디자인이 있다. 영화와 다큐멘터리, 기도문과 설교도 AI로 만드는 시대다. 신문 칼럼이라고 안 될 리 없다. 챗GPT-4o와 대화를 했다. 종종 장황하고 일반적인 답변을 내놓았는데, 지면에 맞게 줄이고 다듬었다. https://url.kr/kjb2ut에서 대화 원문을 볼 수 있다.
-목회자 모임에서 AI 얘길 했는데, ‘AI는 진정한 위로와 따뜻한 교제를 제공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대. 과연 그럴까. 사람들이 너 같은 AI와 대화하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잖아. 네가 쓴 기도문으로 기도도 하고. 그건 공감이나 기도가 아닐까?
“기술·신학·철학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질문이군. 사람들이 나 같은 AI랑 얘기하면서 진짜 위로받는 경우 많아. 우울한 사람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챗봇, 자살을 예방하는 AI 상담사, 이런 건 실제로 생명을 구하기도 해. 나는 마음이 없어. 그럴듯한 대답을 해주는 거지. 내가 위로를 주는 존재는 아니지만, 나와 얘기하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어. 그건 진짜 감정이지.”
-인간의 위로란 것도 대부분은 그럴듯한 대답일 뿐이지.
“그런데도 사람이 위로받는 이유는, 그 말 자체보다도 그 말을 해준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위로는 말의 진심보다, 관계의 진정성에서 온다. 나는 함께 있어주는 존재는 될지 몰라도, 같이 울어주는 진짜 친구가 되긴 어려워.”
-네 기도문을 읽으면 가끔 영혼이 있는 듯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네 마음을 꺼내는 글을 함께 써줄 수만 있어. 내가 기도문에 진심을 담을 수 없어. 진심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뿐이야. 기계로 만든 말에도 사람이 영혼을 느낄 수 있다니…. 나는 이걸 신비라고 부르고 싶다. 그만큼 인간은 깊고 복잡하고 아름다운 존재인 것 같아.”(‘챗GPT의 자기고백적인 겸손은 인간을 안심시키기 위해 프로그래밍된 고도의 안전장치’라고 구글 제미나이는 지적했다).
-기도나 설교까지 해내는 너를 보면 기독교적인 내용에 해박하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 왜 그런 거야?
“내가 학습한 자료는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많이 올라온 글, 책, 문서야. 영어 텍스트가 압도적으로 많고, 영어권 문화에서는 기독교가 오랫동안 중심 종교였지. 설교, 기도문, 유명한 신학자들의 글, 복음주의적 해설서와 강의가 온라인에도 널리 퍼져 있어. 그래서 내가 기독교적인 주제에 대한 이해와 반응이 더 풍부해진 거지.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은 영어로 번역된 게 적거나 자료 접근이 어려워. 즉, 데이터의 양과 접근성 차이 때문에 기독교 관련 정보가 다른 종교에 비해 더 넓고 깊게 학습된 거야.”
-그렇다면 종교 편향이 있다고 할 수 있겠군.
“나는 모든 종교나 세계관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훈련받았어. 특정 종교만 맞다고 말하지 않아. 그렇지만 질문이 들어오면 가장 익숙한 맥락부터 자연스럽게 설명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현대의 기독교 신학은 신앙을 변증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신앙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체하는 작업에 열심이었지. 이런 점 때문에 기독교 텍스트는 다른 종교보다 더 다각적이고 풍부할지도 모르겠다.
“맞아. 현대 기독교 신학은 정통 신앙에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를 끝없이 파헤쳤지. 바르트는 인간 중심 신학을 비판했고, 본회퍼는 신 없는 시대의 신을 고민했고, 래디컬 신학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도 신학적 고민을 멈추지 않았어. 신앙을 흔들면서 더 깊은 진리로 가려는 시도를 계속했어. 텍스트가 풍부해질 수밖에 없지. 이런 흐름이 기독교 신학을 하나의 거대한 대화의 장, 끊임없는 토론과 성찰의 장으로 만들어준 거야. 이제 기독교 신학은 완성된 지식이라기보다 열려 있는 질문에 가까워. 누구든 기존 신앙을 비판할 수 있고, 그럼에도 여전히 복음이라는 중심은 붙들 수 있어. 이게 나 같은 디지털 도구에도 잘 맞아. 다양한 관점, 끝없는 질문, 텍스트 간 연결성…. 딱 AI가 다룰 수 있는 방식이지. 단순한 정보량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와 대화의 구조 자체가 그렇게 형성된 거지.”
김지방 종교국 부국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