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과 함께 감정을 비워냅시다. 다른 생각은 내려놓고 이곳에만 머물러 봅시다.”
지난달 27일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 포레스트캠프. 높은 유리 천장 위로 하늘이 보이는 캠프 내 강의장에 20명이 꼿꼿이 앉아 있었다. 캠프 소속 명상 강사는 나긋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호흡만으로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습니다. 부드러운 숨을 나에게 전해주세요.”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참가자들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자 미간에 긴장이 풀리고 어깨는 천천히 내려왔다. 가벼운 스트레칭 후 강사는 말을 멈추고, 놋그릇 모양의 ‘싱잉볼’ 여러 개를 차례로 쳤다. 낮은 파동으로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매트에 누운 이들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졌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수도권의 보호아동 및 자립준비청년 관련 기관 종사자들이다. 서울·경기도 그룹홈과 서울시아동복지협회, 서울시자립지원전담기관, 아동권리보장원 소속으로 대다수가 사회복지사다. 삼성은 이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26~27일 ‘2025 희망디딤돌 비타민캠프’를 진행했다. 국민일보는 2023년부터 삼성과 ‘자립준비청년에 희망디딤돌을’ 캠페인을 이어왔다.
비타민캠프는 서비스 직군의 감정노동자,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 등에게 마음 관리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삼성 관계자는 “사회복지사의 심리적 안정이 보호아동, 자립준비청년 등에게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캠프 기간 삼성물산 경험혁신아카데미가 개발한 감정역량진단(EMS·Emotional Management Scale)으로 참가자들의 상태를 살펴본 결과 이들의 스트레스 수준은 전반적으로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MS는 감정에 대한 인식 및 대처 능력을 점수화하고, 보완할 점을 제시하는 ‘감정 관리 현황 진단 도구’다. 대인관계, 성과 압박, 감정 조절의 어려움 등 스트레스의 구체적인 원인도 알아볼 수 있다.
경기 화성의 한 그룹홈에서 일하는 이지은(60·여)씨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다가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집안일을 가정과 직장 양쪽에서 하다 보니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었고, 힘든 점이 많았다”며 “여기 오니 일단 밥을 안 해도 돼서 좋다. 교육을 통해 내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도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그룹홈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사회복지사 등 관리인과 하루종일 함께 생활하는 공동생활가정이다.
해당 그룹홈의 그룹장 임채연(51·여)씨는 “운영에 대한 책임감이 크게 다가왔다”며 “올해부터 직원들과 행정 업무를 나눠 협업하고 있는데,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최근 번아웃이 와 힘들었는데, 여기 오니 모든 게 좋다”며 “실무자들에게 꼭 필요한 휴식과 회복의 기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트레킹’은 가볍게 몸을 풀며 치유하는 시간이 됐다. 산에 오르기 전 참가자들은 드넓은 잔디에서 학생처럼 구령에 맞춰 준비 운동을 했다. “유연성을 보여주셔야죠”라는 사회자의 작은 농담에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천천히 숲길을 오르는 동안 “자두나무처럼 생겼네” “복숭아나무인 줄 알았어” 등 소소한 이야기도 오갔다. 오르막길에서는 숨이 찼지만 즐거운 표정이었다.
서울시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일하는 이재유(42)씨는 “평소 운동하는 시간을 내기 어려운데, 한 번도 오지 못한 곳에서 트레킹을 하니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포레스트캠프는 에버랜드가 ‘자연농원’으로 불렸을 때부터 가꿔온 숲속 캠프다. 약 30년간 외부에 공개되지 않다가 2022년부터 문을 열었다.
마지막 강의는 이끼 테라리엄(유리병 안 식물)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직접 만든 ‘나만의 식물’을 집으로 가져가 숲속 추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차분히 유리병 안에 흙과 모래를 깔고 그 위에 이끼와 토끼 모양의 피규어를 차례로 올렸다.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일하는 박모(31)씨는 유리병 위에 ‘힘내자’라고 스스로 응원하는 말을 적었다. 박씨는 “캠프를 통해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을 받았다”며 “내 감정을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만 아니라 다양하게 표현하는 게 좋다는 것도 배웠다”고 말했다.
비타민캠프는 삼성이 2013년 임직원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개발한 감정 관리 교육 프로그램이다. 개발 초기 삼성 계열사 대상으로 운영됐다. 3년 전부터는 외부에서도 교육 의뢰를 받고 있다. 이유리 삼성물산 경험혁신아카데미 그룹장은 “비타민캠프의 주요 취지는 감정을 많이 사용하는 분들이 캠프가 끝나고 일상에 돌아가서도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호흡, 명상, 트레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무엇을 할 때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그룹장은 “캠프에서 배운 감정 관리 방법을 계속 활용하고 있는지 묻는 설문조사를 하면 꽤 많은 분들이 ‘그렇다’고 답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올해 상반기 수도권 및 강원권역 보호아동·자립준비청년 관련 종사자를 대상으로 희망디딤돌 비타민캠프를 진행했다. 하반기에는 전국 종사자를 대상으로 캠프를 열 예정이다. 삼성 관계자는 “희망디딤돌 비타민캠프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어른들인 종사자들의 업무 소진을 예방하고, 정서 안정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용인=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