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이 대통령의 생존철학

입력 2025-07-03 00:38

이재명 대통령은 2017년 성남시장 시절 처음 대권에 도전했지만 더불어민주당 내 경선 승리는 언감생심이었다. 가장 큰 경쟁자는 2012년 대선 본선에서 석패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었다. 2위를 노리기에도 안희정 충남지사의 벽이 높았다. 이 둘은 모두 느슨했지만, 또 거대했던 친노 팬덤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들이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경선에서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뤄냈다. ‘선의’ 발언 등으로 중도를 공략하던 안 지사를 꺾을 뻔했다. 최종 경선 합계 득표율은 21.2%로, 안 지사(21.5%)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첫 호남권 경선에서 그는 아마추어 같은 연설을 했지만, 마지막 수도권 경선 연설은 ‘변방’ 운동권이 겪은 회한이 담겼다. 압권은 경선 패배 직후 승복 소감이었다. “동지 여러분 울지 마십시오. 거대한 태풍을 만들어내는 나비의 날갯짓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여기까지 온 것도 이미 기적이다. 우리는 세력도 돈도 조직도 언론도 없다”며 “오늘 첫 번째 전투에서 졌지만 거대한 전장에서 더 큰 전쟁을 준비하자”고 피 토하듯 외쳤다. 대부분 경선 1위에 주목할 때 몇몇 기자는 이 대통령이 한 단계 뛰어오른 거 같다고 얘기했었다. 이때 그가 내세운 정치 목표가 ‘공평한 기회, 공정한 경쟁, 모두가 몫을 누리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였다. 대통령이 된 지금도 되풀이하는 말이다.

성남시장 시절과 지금 그가 하는 얘기 중에는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있다. 정치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관은 여전하다. 그는 과거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옛날에는 정치인이 지지고 볶아 답을 만들면 대중은 어쩔 수 없이 그 답을 선택했다. 지배의 대상이었다”며 “지금은 네트워크로 무장한 집단지성”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이 된 지금도 그는 이 말을 달고 산다. 대부분 정치 일정을 SNS로 공개하고, 국민추천제 등 직접 민주주의를 이식한 인사제도를 도입했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대출 규제를 두고 논란이 크다. 이 방식은 8년 전 이 대통령 생각과 반만 같다. 이 대통령은 과거 “가계 부채를 줄일 방법이 별로 없다. 부동산을 처분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면 경착륙이 온다”며 “현 상태를 유지한 채 경제를 성장시켜 상대적으로 가계부채 비율이 떨어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선 경제성장을 주장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엄혹한 현실 앞에선 규제 먼저 꺼내 들었다. 그것도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대출 총량 규제 방식이다. 시간이 걸리는 경제 성장에 앞서 급등세부터 잡겠다는 실용적 판단일 거다.

현실 타협 사례 중에는 포퓰리즘 정책도 있다. 그는 2017년 영업이익 500억원 이상 440개 기업(0.07%) 법인세율 인상(30%), 과세표준 10억원 이상 초고액 소득자 6000명(0.02%) 소득세율 인상(50%), 그리고 국가 예산 7~10% 절감을 통해 50조원을 확보한 뒤 장기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기본소득은 공약에서 사라졌다.

그는 스스로 ‘변방의 벼룩’으로 칭했다. 혈혈단신으로 대선에 나섰지만 친문의 ‘페이스메이커’로만 여겨졌던 자신을 자평한 말이다. 세력도, 돈도, 조직도 없던 벼룩이 8년간 날갯짓 끝에 대통령직을 쟁취했다. 그 과정에서 체득한 생존 방식이 실용주의다. 그때그때 맞는 답을 찾아가는 그 스타일이 그래서 앞으로도 쉽게 바뀔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위기는 지지율이 훨씬 높아졌을 때 찾아올 것이다. 돌다리를 두드리는 대신 한걸음에 개울을 뛰어넘고 싶어질 때, 욕망을 자제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나 민주당의 부동산 3법 같은 게 그랬다.

강준구 정치부장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