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 항공유(SAF·Sustainable Aviation Fuel)가 하늘길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부터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SAF 사용 의무화가 본격 시행되면서, 국내 항공사들도 ‘친환경 비행’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탄소 배출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는 SAF는 항공업계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이끌 기술로 주목받지만, 높은 가격이라는 현실적 장벽도 여전히 존재한다. 대한항공 등 국내 항공사들은 환경적 책임과 경영상 효율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탄소중립의 열쇠 ‘SAF’, 국제 항공의 새 기준 되다
SAF는 폐식용유, 동물성 지방, 옥수수, 해조류 등 재생 가능한 자원이나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제조된 차세대 항공연료다. 기존 화석연료 기반 항공유와 화학 구조가 같아 항공기를 개조하지 않고도 혼합해 사용할 수 있다는 실용성이 강점이다. 생산·소비 전 과정에서 탄소를 흡수하는 순환 구조로 설계돼 기존 항공유 대비 최대 80%의 탄소 감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 세계 항공산업은 SAF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인식하고 있다. EU는 올해부터 역내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에 SAF 2% 혼합을 의무화한 ‘리퓨얼EU’(ReFuelEU) 정책을 시행 중이다. 지난해 1%에서 배로 늘어났다. 이 혼합 비율은 2030년 6%, 2035년 20%, 2050년까지는 70%로 점차 확대된다. 미국도 ‘SAF 그랜드 챌린지’를 통해 2050년까지 모든 항공유를 SAF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캐나다, 싱가포르, 일본, 인도네시아 등도 혼합 비율 설정, 세제 혜택 등을 통해 SAF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역시 2030년까지 SAF를 통해 항공 탄소 배출량을 현재 대비 5%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내 SAF 도입 ‘초기 단계’… 의무화 논의 본격화
한국도 SAF 사용 의무화를 위한 제도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2027년부터 국내 공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편에 SAF 1% 혼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2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개정을 통해 SAF 지원 근거를 마련했고, 같은 해 8월에는 ‘지속가능 항공유 확산 전략’을 통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국내 항공사들은 해외 기준에 맞춰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2017년 SAF를 도입해 인천~시카고, 인천~하네다 노선에 1% 혼합 항공유를 시범적으로 급유하며 국내 최초로 SAF 상용 운항을 시작했다. 이후 SAF 확대를 위한 기반 조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에쓰오일·SK에너지와 SAF 생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글로벌 에너지 기업 쉘과는 SAF 우선 공급 계약을 맺으며 공급망 확보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쉘과의 협약에 따라 내년부터 5년간 아시아·태평양 및 중동 지역 공항에서 SAF를 공급받을 예정이다.
정부 주관 SAF 실증 사업에 참여해 6차례 SAF 기반 항공편 운항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지난해 8월부터는 국산 SAF가 1% 혼합된 여객기 인천~하네다 노선을 주 1회 정기 운항하고 있다. 이 노선은 이달까지 1년간 정기적으로 운영되며 현재 연장 운영을 검토 중이다. 대한항공은 SAF 혼합유를 사용하는 새로운 정기 노선의 운항도 고려하고 있다.
유럽 노선에서도 SAF 사용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올해부터 파리, 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 등 EU 10개 공항과 SAF 의무화 정책을 시행 중인 영국 런던, SAF 조기 도입국인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에서 출발하는 여객기와 화물기에 SAF를 혼합해 급유하고 있다”며 “SAF 사용 확대뿐 아니라 친환경 제품 도입, 고효율 항공기 운영 등을 통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2년 6월부터 인천~파리 노선에 최초로 SAF 혼합유를 도입한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9월 인천~하네다 노선에 SAF 혼합유를 적용했다. 올해부터는 프랑크푸르트, 파리, 런던, 로마, 바르셀로나 등 5개 유럽 노선에서 2% 혼합 급유를 시작했다. 티웨이항공도 올해부터 주요 유럽 노선에 SAF 2%를 적용 중이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 “운임 인상 피할 수 없을 수도”
이처럼 SAF 확대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한항공이 최근 발간한 ‘ESG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항공이 사용한 SAF는 15만1344갤런으로, 전년(7만1355갤런) 대비 배 이상 증가했지만 전체 항공유 사용량과 비교하면 비중은 0.01%에 불과하다.
민간 항공사 입장에서는 수익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SAF가 친환경적인 연료인 것은 분명하지만, SAF 가격은 일반 항공유보다 2~5배 비싸다. 항공사의 전체 운항비용에서 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에 달해 SAF 사용량을 크게 늘리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항공이 2022년 국제 비영리단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노선에 SAF를 2%만 혼합해도 연간 약 229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혼합 비율이 높아지고 적용 국가가 늘어날수록 이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SAF 관련 요금이 현실화하고 있다. 독일 루프트한자는 지난 1월부터 EU·영국·노르웨이발 항공편에 최대 72유로(약 11만5000원)의 SAF 요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에어프랑스-KLM도 최대 12유로를 별도로 징수하고 있다. 올해 SAF 2% 혼합이 27개 EU 회원국 전체로 확대된 만큼 유류비 증가에 따른 항공권 인상 가능성은 더 커졌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SAF 적용 노선이 제한적이라 운임 인상 요인이 크지 않지만, 의무화가 본격화되면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 정부의 세제 지원이나 유통망 확대 없이는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공공과 민간이 함께 공급 기반을 확충하고, 가격 안정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친환경 비행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