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외로움의 의학적, 사회적 폐해를 심층 분석해 보고서를 냈다. 담배를 매일 15개비씩 피우는 것과 같다거나 8시간 외로우면 8시간 굶는 것만큼 에너지가 고갈된다는 식의 비유에서 벗어나, 이 보고서는 죽음을 정면으로 다뤘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뇌졸중 심장병 당뇨 우울증 자살 위험을 높이며, 이로 인해 해마다 세계에서 87만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 적시했다. 매시간 100명씩 외로움에서 비롯된 죽음을 마주하는 셈이다. WHO 사무총장은 “외로움과 고립을 방치하면 교육 고용 보건 등 사회 전반에 수십억 달러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며 개인과 건강의 문제를 넘어 공동체 안위와 직결된 사회적 증상임을 강조했다.
인터넷과 SNS로 연결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대에 세계인의 6분의 1, 노년층의 3분의 1, 청소년의 4분의 1이 사회적 고립 상태라는 역설의 원인을 보고서는 1인 가구 증가, 디지털 기술의 남용, 지역사회 인프라 부족 등 현대사회 구조에서 찾았다. 이를 풀기 위해 국가 차원의 정책적 노력을 시작한 나라로 덴마크 영국 독일 스웨덴 일본 네덜란드 등 8개국을 꼽았다. 학생들의 대면 접촉을 늘리려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금하고 단체 활동용 선불카드를 지급하는 스웨덴 학교, 계산대에 ‘수다 카운터’를 지정해 노인 고객이 점원과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하는 네덜란드 마트 등 일상 구석구석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됐고, 영국과 일본은 이 문제를 전담하는 정부 부처를 신설해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외로움 정책’ 선도국 명단에 한국은 들지 못했다. 1인 가구가 1000만을 넘어서고 단절 위험 인구가 40%에 육박해 시급해진 정책적 대응을 주로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해 왔다. 3년간 15만명이 다녀간 서울시 ‘1인 가구 지원센터’는 한국인이 이런 정책적 도움을 얼마나 갈구하고 있는지 보여줬다. 이제 더 넓은 시각에서 다룰 때가 됐다. 마침 새 정부가 ‘외로움 전담 차관’을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의 유대감을 높이는 정부 차원의 정책 발굴과 실행이 이어진다면 정치 양극화의 갈등과 분열을 완화하는 토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