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의 인사로 본 정책 방향은 ‘인공지능(AI) 강국’ 구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AI 코리아’라는 책을 쓴 AI 전도사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LG AI연구원장,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은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 출신이다. 이들이 각각 AI 정책, 기술개발, 전략기획을 맡아 AI 한국의 청사진을 그린다. 시의적절한 적재적소의 진용이란 평이다. 그러나 인재와 리더를 뽑아도 정책을 구현할 인프라가 부족하다면 말짱 헛일이다. 지금 한국의 현실이 딱 그렇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AI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시설인 데이터센터가 건립부터 지역 주민들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수도권에서 데이터센터 건설 인허가를 받고 사업을 진행 중인 33곳 중 17곳이 지연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11∼12곳은 1년 이상 미착공 상태라니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는 왜 해줬나 싶다. AI 산업 동력인 전력망 설치도 마찬가지다. 현재 주요 송전선로 31곳 중 26곳의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대한상공회의소).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이들 시설에서 나오는 전자파 유해성이다. 하지만 측정 결과 데이터센터나 송전망의 전자파는 가정용 전자레인지보다 낮다. AI 혁신의 핵심이 혐오·유해시설 로 취급받아 ‘님비’ 현상을 부르는 상황이 씁쓸하다.
이는 AI 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의 데이터센터는 153곳으로 미국(5381곳)은 물론이고 독일(521곳), 영국(514곳), 일본(251곳)에 비해서도 크게 부족하다. 태안화력발전소와 아산·탕정 디스플레이 산업 단지를 잇는 44.6㎞의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당초 예상보다 12년이나 늦춰지며 지난 4월 초에야 준공식을 가졌다. 이런 마당에 ‘AI 3대 강국, 100조 투자’ 구호가 무슨 소용인가.
AI 핵심 인프라 건설은 국가 경쟁력에 필수인 만큼 정부가 지자체에만 맡기지 말고 인허가 절차 간소화, 합리적 주민 보상 마련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 전력 수급 원활화 차원에서 데이터센터와 각종 AI 시설 등의 비수도권 분산 방안도 고심할 필요가 있다. 전력과다사용 시설 상당수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 부지 확보 어려움 등을 고려하면 지방으로의 확장은 불가피하다. 네트워크 인프라, 운영 인력 확보를 위한 각종 인센티브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AI 시설 확충이 늦춰질수록 우리나라는 혹독한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되고 만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