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전 세계 무역 상대국에 부여한 상호관세 유예 시한이 오는 8일로 다가온 가운데 각국의 주요 수출품에 부과된 품목별 관세가 무역협상 타결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나 유럽의 의약품 등 각국의 핵심 산업을 품목관세 표적으로 삼고, 각국이 이에 저항하면서 협상 진척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30일(현지시간) ‘무역협상을 진행 중인 국가들에 추가 관세 위협이 드리웠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국의 주요 교역국에서 자국 주요 산업이 향후 품목관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지난 4월 2일 전 세계 무역 상대국에 발표한 상호관세 외에도 별도로 품목별 관세를 부과 중이다.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철강과 알루미늄 등에는 이미 품목관세를 부과했고 반도체와 의약품, 목재와 구리 등에 대해선 부과를 예고한 상태다.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미국의 국가안보와 핵심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논리가 적용됐다. NYT는 “일부 외국 정부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보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품목)관세가 더 큰 우려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유럽연합(EU)의 경우 대미 최대 수출품인 의약품에 품목관세가 부과되면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미국과 EU의 무역협상에서 의약품 관세가 면제될지는 불확실하다. 최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EU의 주요 산업 보호를 강조하며 “우리는 자동차, 화학, 의약품, 기계에 대한 신속한 공동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에 대한 25% 품목관세는 이미 한국과 일본, 유럽 모두에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전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도 한국과 일본 자동차에 낮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트럼프가 향후 반도체와 전자제품에 품목관세를 매길 경우에도 한국과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미국이 영국 사례처럼 품목관세에 대해서도 협상의 여지를 줄 가능성은 있다. 미국은 영국과 무역협상을 타결하면서 영국산 자동차에 대해 연간 10만대까지는 10%의 관세만 부과하는 할당제를 도입했다. 미국과 영국은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품목관세 조정도 협상 중이다.
문제는 한국 등의 자동차 수출 물량이 영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 미국으로서도 관세를 양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피터 해럴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NYT에 “영국은 매년 미국에 약 10만대의 자동차를 수출하지만 일본과 EU, 한국은 합쳐서 지난해에만 약 350만대를 수출했다. 이는 미국 시장에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트럼프가 이같이 많은 양의 자동차에 대해 면제를 허용한다면 더 이상 25% 자동차 관세라고 볼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