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서원으로 승복을 입어야 했던 캄보디아 청년 리띠(가명)가 최근 유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이승찬(32) 선교사를 찾아온 지 1년여 만의 결실이다. 캄보디아에서 국가대표는 군인으로 특채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 선교사는 4일 캄보디아로 돌아가기에 앞서 최근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이 청년을 사역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전했다.
더 깊은 변화는 리띠의 내면에서 시작됐다. 묵묵히 자신을 가르친 스승 이 선교사는 매트에 오르기 전 늘 기도부터 했다. 이를 지켜보던 리띠는 이 선교사의 삶과 신앙의 근원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 선교사의 사역 방식이 맺은 결실이기도 하다. 이 선교사는 불교국가인 캄보디아에서 섣부른 전도를 경계하며 “제자들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란 걸 다 안다. 먼저 다가와 물어볼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유도의 핵심 정신인 ‘자타공영(自他共榮·함께 번영)’과 ‘정력선용(精力善用·힘의 선한 사용)’을 자주 언급한다. 그는 “유도 정신은 기독교의 나눔과 섬김의 가치와 닮았다”며 “상대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을 가르치다 보면 복음의 가치가 자연스레 스며든다”고 말했다.
소년소녀가장으로 방황의 시기를 겪다 신앙을 만난 그는 유도복과 성경을 들고 무작정 캄보디아로 향했다. 열악한 지원 탓에 그의 삶은 둘로 쪼개질 수밖에 없었다. 캄보디아에선 유도 국가대표 감독으로까지 인정받았지만 사역비를 벌어야 했던 한국에선 식당 설거지와 대리운전으로 밤을 새우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고된 시간을 버티던 이 선교사에게 협력교회인 포이에마예수교회와의 만남은 전환점이 됐다. 카페를 운영하던 교회 권사가 성경을 공부하던 이 선교사의 모습에 감명받아 기도한 것이 인연이 됐다. 교회는 그의 비행기표와 신학대학원 학비를 지원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최근에는 유도 관계자의 도움으로 한국에서도 코치로 일할 길이 열렸다. 이 선교사는 “비로소 한국과 캄보디아 양쪽에서 ‘유도인’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현실의 무게는 여전하다. 이 선교사는 일년에 절반 가까이 한국에서 일하며 사역비를 스스로 충당하고 있다. 고된 길을 걷는 이유는 캄보디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강한 끌림 때문이다. 그는 “공항에 내려 첫발이 닿았을 때, ‘아, 여기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뜨거운 공기, 사람들의 순수한 눈빛이 좋았다. 그냥 이 나라와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교사의 최종 목표는 ‘물러남’이다. 자신이 세운 결실을 자랑하는 대신 제자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선교의 완성이라고 믿는다. 그는 “이 자리는 마땅히 캄보디아인들의 것”이라며 “아직 캄보디아 사역이 언제 마무리될지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다음 사역지가 어디든지 유도복을 입은 주님의 종으로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소중히 여기며 몸으로 섬길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