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느끼는 복음… 시각장애 목사 “강화도 기독史 보여요”

입력 2025-07-02 03:01
서민택(오른쪽) 삼성교회 목사가 조지 존스 선교사 얼굴 모형을 손끝으로 느끼는 장면.

인천 강화교산교회(박기현 목사) 앞마당에 버스 한 대가 멈췄다. 조심스레 내리는 이들. 손을 뻗고, 팔을 잡고, 서로를 향해 조용히 길을 연다. 자원봉사자의 말에 따라 한 시각장애인 목회자가 손끝을 움직인다. 거친 표면, 낮게 돋아난 얼굴 윤곽. “이건 조지 존스(1867~1919) 선교사님 얼굴이고요, 그 옆이 이승환 권사님이에요.” 보이지 않아도 손끝이 먼저 이해한다. 오늘의 순례는 ‘보는 여행’이 아닌 ‘느끼는 여행’이었다.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라고 밝힌 서민택 삼성교회 목사는 동행한 기자에게 말했다. “만져지는 모든 물건 하나하나가 마치 역사의 한 페이지 같습니다. 이 역사를 직접 제가 ‘보게’ 되네요.”

AL미니스트리(대표 정민교 목사)와 토비아선교회(대표 김덕진 목사)가 30일 시각장애인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기독교 역사 순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강화도의 역사와 함께하는 순례’라는 이름으로 열린 행사에는 시각장애인 목회자 13명과 자원봉사자 17명이 함께했다. 조문섭 토비아선교회 목사가 순례길 안내를 맡았다.

강화교산교회는 1893년 강화도에 세워진 최초의 감리교회다. 평민 이승환과 양반 김상임의 회심을 통해 복음이 퍼졌다. 신분과 계층을 넘어선 복음 공동체의 시작점이자 강화도 감리교 전파의 뿌리로 평가받는다.

조 목사는 교회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승환 권사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부터 신앙이 없는 어머니를 위해 주막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전도하며 기도했던 일화까지.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시각장애인들의 입술에선 감탄과 놀라움이 연신 나왔다.

조 목사는 “우리는 부흥만을 말하기 전에 교회를 세운 이들의 삶을 기억해야 한다”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에서도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떻게 교회를 세우고 있는가’ 이 질문을 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강화교산교회 앞마당에는 이 권사 어머니의 선상 세례 모형이 설치돼 있다. 마을 사람들의 반대로 선교사가 들어올 수 없어 대신 배 위에서 세례를 나눈 장면을 재현했다. 참가자들은 직접 모형에 올라가 이를 손으로 만지면서 세례 장면을 느꼈다. 시각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의 연주도 이어졌다. 시각장애인 최초로 미국 뉴욕 맨해튼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그는 ‘십자가의 전달자’ ‘사명’ 등을 들려줬다.

강화읍 언덕 위에 자리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사찰 같은 교회’로 불린다. 사찰처럼 외산문과 내산문을 거쳐 기와지붕을 얹은 본당에 들어간다. 참가자들은 안내자의 손끝을 따라 문을 더듬고 마당의 보리수나무 껍질을 쓰다듬으며 예배당을 체험했다.

한옥 외관의 강화성당 내부는 서양 고딕 전통의 바실리카 양식이다. 소나무 기둥이 줄지어 있고 회랑이 길게 뻗어 있다. 전통 한옥의 외관과 서양식 내부 구조가 조화를 이룬 이곳은 1900년부터 예배를 드려왔다.

강화 성지순례에 참석한 시각장애인 목회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성공회 강화성당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예배당 안에는 예수의 수난 장면을 비롯해 강화성당의 역사를 담은 액자가 걸려 있다. 자원봉사자가 액자 속을 짚어가며 십자가 여정을 설명하면 시각장애인 목회자들은 이를 손끝으로 따라가며 고통의 길을 더듬는다. 자원봉사자 이선미(41)씨는 이같이 설명했다. “지금 만지는 이것은 의자고 옆에는 창문이 있네요. 사진을 보니깐 당시엔 하얀 천으로 남녀 구분을 했대요.” 이씨의 손을 꼭 잡고 설명을 듣는 송문경 말씀교회 부목사는 은은한 미소로 화답했다.

순례길의 마지막 방문지는 온수리교회였다. 순례자들은 기도 제목을 나누고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야트막한 언덕을 내려왔다.

시각장애인 김기화(왼쪽 두 번째) 대구하늘빛교회 목사가 30일 인천 강화교산교회 앞에 설치된 선상세례 동상을 만지고 있다.

김기화 대구하늘빛교회 목사는 “일반 성지에서는 대부분 유물이나 구조물을 만지는 것이 제한되는데 이번에는 실제로 손으로 만져볼 수 있었다”며 “시각적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도 오히려 촉각을 통해 더 생생하게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성지순례였다”고 말했다.

정민교 대표는 “이번 순례를 통해 시각장애인이 촉각으로도 순례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며 “인식 개선은 이론이 아니라 동행하고 살아가며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화=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