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건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지더라도 끝까지 한 편 먹는거야. 백 번이라도, 천 번이라도 옆에서 함께 지는 게 사랑이야.”
어릴 때 사고로 몸이 불편해진 호수(박진영)는 최근 돌발성 난청이라는 또 한 번의 시련을 마주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될까 두려운 그는 가족과 연인에게서 스스로 멀어지려 한다. 엄마 분홍(김선영)은 그런 호수를 찾아와 이 같은 말을 건넨다.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이 29일 전국 최고 10.3%(닐슨코리아 기준) 시청률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장르물의 홍수 속에서 저마다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서로의 존재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인생 2막을 여는 과정을 담담하게 전하며 드라마는 화제성을 독식했다. 첫회 시청률은 3.6%였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호응을 얻으며 자체 최고 시청률로 종영했다.
드라마는 쌍둥이 자매 미지·미래(박보영)가 삶을 바꿔 살면서 시작됐다. 얼굴 빼고 모든 것이 다른 쌍둥이는 일종의 역할극을 하며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된다.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게 된 이들은 각자 아픔을 딛고 정체성을 찾아 나아간다.
육상 선수를 꿈꾸다 부상 당해 꿈이 꺾인 미지는 가족과 친구, 연인의 응원을 받아 심리상담사라는 새로운 꿈에 도전한다. 자신의 꿈보다는 가족의 생계를 챙기던 미래는 자신을 괴롭히던 직장 상사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리고 고향에 돌아와 딸기 농사를 시작한다.
‘미지의 서울’은 세상의 시선과 기준에 휘둘리기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희망을 잃고 방안에 틀어박힌 미지를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도망친 것, 숨는 것, 다 살려고 하는 짓이야. 살려고 한 짓은 용감한 거야”라고 말하는 할머니(차미경)의 대사는 움츠리고 있는 현실 속 청춘을 위로한다.
무엇보다 드라마는 그 누구도 혼자서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고,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호수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 괴로워하는 미지에게 로사식당 주인 상월(원미경)은 “꼭 뭘 해줘야지만 옆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옆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문 앞에 내가 있으니 언제든 나오라’고 똑똑 두드리면 된다”고 조언한다.
주연을 맡은 박보영과 박진영은 섬세한 연기로 인물의 감정을 전달해 호평받았다. 주변 인물로 등장한 장영남, 김선영, 원미경, 차미경 등 중견 배우들의 열연은 시청자를 웃기고 울렸다.
윤석진 드라마 평론가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 속에서 2030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의 고통을 잘 풀어낸 것이 이 드라마의 미학”이라며 “분홍과 옥희(장영남)의 경우 단순히 엄마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중년의 문제들을 짚었다. 젊은 주인공들의 서사가 상월의 사연으로까지 확장되며 ‘자기 주도적으로 써내려가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교조적이지 않게 풀어냈다”고 분석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