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영향력이 국제무대에서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최근 지지율이 약 40%로 본인의 세 번 임기 중 최저를 기록하는 등 국내에서 인기도 예전 같지 않다. 2026년 대선에서 우파가 정권을 되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9일(현지시간) 룰라 대통령에 대해 “브라질을 세계에 알렸지만 변화한 세계 정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는 서방에 점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6월 21일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공습했을 때 브라질 정부는 곧바로 규탄 성명을 내고 “이란의 주권과 국제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브라질의 강경한 표현은 공습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데 그친 다른 서방 국가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룰라는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의 관계를 다시 구축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대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1년 동안 두 차례 만나는 등 중국 구애에 집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브라질의 실제 위상에 비해 룰라의 행보가 과장되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룰라는 지난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식에 참석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였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해야 한다는 그의 말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브라질은 올해 브릭스(BRICS) 의장국으로 오는 6~7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릭스 정상회의를 연다. 하지만 시 주석은 이번에 처음으로 불참할 것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도 화상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브릭스 핵심 국가인 중·러 정상이 모두 직접 오지 않는 것이다.
룰라의 인접국 외교도 실용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념적 차이를 이유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는 반면 독재자로 전락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우호적으로 대한다.
룰라는 집권 1·2기(2003~2010년)와 비교해 국내 정치 기반도 약해졌다. 최근 브라질 의회는 룰라의 증세 행정명령을 거부해 그에게 굴욕을 안겼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쿠데타 모의 혐의로 구속을 앞두고 있는데, 그가 후계자를 지명하고 우파를 결집할 경우 그 후계자가 2026년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관측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