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이 불리한 선거를 앞두고 청년 정치인을 당 간판으로 앞세웠다가 패배 후 토사구팽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2022년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파격 기용됐던 박지현(사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에 이어 이번엔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열세인 선거판 전면에 섰다가 어떤 유산도 남기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했다.
김 위원장은 30일 국회에서 퇴임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제 역할이 전당대회 출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백의종군해 국회의원으로 돌아가겠다. 동료, 선배 의원의 개혁 의지를 모으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 본청 비대위 회의실에서 홀로 퇴임사를 읽어 내려갔다. 송언석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가 격려 인사차 짧게 들른 것을 제외하고 회견에 참석한 전현직 지도부 인사는 없었다.
김 위원장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대신 당의 쇄신을 주장했지만 당은 별달리 호응하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등 그가 제시했던 5대 개혁안도 친윤(친윤석열)계 등 구 주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지금 보수 야당이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윤석열 정권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당의 존립과 개혁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전 당원 투표를 주장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대선 후 당의 개혁 성과를 점수로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는 “빵점”이라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당의 몰락을 가져온 기득권이 근본적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면 국민의힘에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며 ‘보수 재건의 길’을 강조했다. 그는 줄 세우기 정치, 측근 정치, 선동 정치, 음모론, 우상화, 중우정치 등을 낡은 폐습으로 지목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독재 요인을 혁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석이 된 비대위원장직은 송 원내대표가 겸임한다. 송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김대식(초선)·조은희(재선)·박덕흠(4선) 의원을 비대위원으로 내정했다. 나머지 비대위원 2명은 원외 인사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민주당은 20대 대선 패배 후 당시 26세였던 여성 활동가 박지현씨를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박 전 위원장은 지선 승리를 위해 ‘586 용퇴론’과 함께 폭력적 팬덤과의 결별 등 5대 혁신안을 내놨지만 당 주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6·1 지선 참패 이후 박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혁신안도 흐지부지됐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위기 국면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희생양”이라며 “거대 양당 모두 선거를 앞두고 겉옷만 갈아입고 실제로 달라지는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헤게모니는 여전히 당의 주류가 쥐면서 어리고 젊은 정치인들을 얼굴마담으로 세우지만 쇄신을 위한 권력의 이양은 전혀 없었다”고 비판했다.
정우진 이강민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