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틀란디아호에 입선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전쟁의 포화 속 피어난 사랑과 헌신의 덴마크 병원선 이야기, 이제 그 위대한 항해가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배우 진선규의 내레이션을 시작으로 2시간 동안 관객 1500여명을 만난 창작 뮤지컬이 상연된 장소는 다름 아닌 교회였다. 경기도 하남 미래를사는교회(이상용 목사)는 호국보훈의 달 마지막 주일인 29일 창작 뮤지컬 ‘유틀란디아-999일의 항해’를 무대에 올렸다. 뮤지컬은 진선규 등 현직 배우를 포함한 교회 성도의 협력으로 극부터 노래까지 자체 제작했다.
뮤지컬은 6·25전쟁 당시 유엔 의료참전국인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통해 구조됐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스토리는 전쟁 중 한쪽 다리를 잃은 주인공에게 주한 덴마크대사관 공보관이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객석엔 실존 인물인 김주완(87)씨와 주한 덴마크대사관 관계자도 참석했다. 유틀란디아호는 한국전쟁 참전군인 부상자 4981명과 한국인 6000여명을 치료했다.
교회 예배당은 성도와 관람객으로 꽉 찼다. 외부인은 500명 이상 참석했다. 관객들은 전쟁 중 철도 사고로 다리를 잃은 뒤 절망하는 주인공을 병원선 의료진이 치료하며 위로를 건넬 땐 눈물을 훔쳤고, 요양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이 귀가 어두워 간호사가 소리치며 과거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박장대소했다.
이상용 목사는 “배우를 포함해 극을 올리기 위해 수고해 주신 성도님들의 헌신과 돕는 손길, 그리고 열정과 도전 정신이 있기에 가능했던 무대였다”며 “‘조건 없는 헌신’이라는 작품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해 관객에 감동을 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뮤지컬엔 진선규 박보경 임소현 김재선 최호근 등 현직 배우뿐 아니라 회사원 성도 25명이 출연했다. 공연 전날 마지막 리허설엔 오후 1시에 모여 자정이 다 되도록 연습했다. 이날 기자와 만난 진선규는 “회사에 다니면서 퇴근 후 연습하는 직장인 성도님들의 열정에 좋은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박보경도 “자정까지 연습하고 새벽 5시에 바로 출근한다는 성도님들이 직업 연기자인 저희보다 더 대단하다”며 칭찬했다.
진선규 박보경이 같은 무대에 선 것은 20여년 만이다. 박보경은 “배우로서 교회 사역에 도움이 되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이번 무대는 오랜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했다. 이들은 짬 나는 대로 성도들과 연습했는데 한 번에 4시간 이상 4개월간 연습했다.
이번 뮤지컬을 위해 교회는 문화사역팀과 청년부 등이 의상, 소품, 무대 제작을 거들었고 성도들은 주차 안내, 선물 준비 등으로 힘을 보탰다. 뮤지컬 배우 경력을 가진 문화사역팀 김태준 집사는 극작은 물론 작사에 참여했고 외부 전문가인 이정인 작곡가에게 작곡과 편곡을 맡겨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배우들은 연기가 처음인 성도를 위해 발성과 연기를 지도했고 진선규가 활동하는 극단 ‘간다’에서 공연 당일 음향과 조명으로 함께했다.
진선규는 이번 무대가 지금껏 배우 경력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누군가는 제가 교회 무대를 돕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오히려 더 많이 배웠다”며 “연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담으려는 성도님들을 보면서 왜 연기가 하고 싶었는지, 연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출과 의료진 배역도 맡은 김 집사는 “평소 우러러보던 배우들과 직접 호흡을 맞춰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며 “뮤지컬이라는 문화 플랫폼을 통해 이웃들이 교회 문턱을 넘고, 일면식도 없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놓는 그 사랑을 일상적인 언어로 전할 수 있어 기뻤다”고 했다.
이 목사는 “공연을 준비하다 보니 예상과 달리 두 배에 달하는 비용이 들었다”면서도 “교회가 비판을 받는 시대에 기독교 가치관을 담은 문화 공연을 통해 지역사회에 행복을 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하남=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