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서울 서초동 한 고깃집 지하방에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들과 검찰 출입기자단의 회식이 종종 열렸다. 중수부장의 덕담으로 화기애애하게 시작되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검사와 기자들은 번갈아 폭탄주를 마시며 기싸움을 벌였다. 취한 기자들은 화장실에 가는 척 술자리에서 들은 한 가닥 기삿거리를 취재수첩에 적었지만 다음 날 보면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하루 3끼 밥보다 많은 물(낙종)을 먹으며 ‘팩트 확인도 못 하느냐’는 데스크 타박에 멀리 한강을 바라보며 한숨 쉬는 날이 많았다. 대검 11층에 위치했던 중수부 조사실의 두꺼운 철문은 늘 굳게 잠겨 있었다. 그 ‘비밀의 문’에 들어가 불법 대선자금이 어디서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 적혀 있는 문건을 들고나오는 상상은 즐거웠다. 현실은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검찰 조사를 받고 귀가하는 대기업 관계자 집 앞에서 자정 넘어 ‘뻗치기’를 해도 제대로 된 기사 한 줄 쓰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다.
검찰 전성시대였다. 거악 척결이라는 기치 아래 대통령 측근들이 하나둘 구속되는 모습에 국민은 열광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하는 중수부장을 응원하는 팬클럽까지 생겼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검찰은 무리한 수사에 따른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기점으로 급속히 가세가 기울었다. 중수부는 해체됐고, 수사권은 수차례 축소됐다. 그 과정에서 수사 역량도 감소했다. 최근 몇 년 새 대기업과 거물급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한 검찰 특수 수사는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다. 당장 김건희씨에게 면죄부를 준 서울중앙지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처럼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가 아닌 ‘성역을 보호하는’ 수사를 해 왔다. 이와 반대로 권력이 원한다면 별건 수사와 먼지털기식 조사를 바탕으로 한 무리한 기소도 주특기였다. 훗날 무죄가 나와도 법원 탓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들은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2009년 현대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1년 가까이 구속됐다 무죄 판결로 풀려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의 말은 무소불위했던 검찰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을 벼르고 있다.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 검찰청을 폐지하고 검찰 기능을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쪼개는 방식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지금 분위기만 보면 검사라는 직업은 곧 사라질 것만 같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 정부는 검사에게 정권 초 명운을 맡겼다. ‘특별한’ 검사들이 주축이 된 3대 특검은 죽은 권력에 카운터펀치를 날릴 태세다. 이 대통령이 임명한 3대 특검 중 2명은 특수통 검사 출신이다. 100명이 넘는 난다 긴다 하는 현직 검사들도 합류했다. 대검 중수부가 특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 3대 특검은 과거 검찰 전성시대의 인력 구성이나 수사 기법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대통령실 민정수석은 검사 출신이 낙마하자 또 다른 전 검사가 중용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말로는 강력한 검찰개혁을 강조하지만 그 주체는 국회여야 한다며 한발 물러선 스탠스다.
권력은 늘 ‘칼잡이’가 필요했고, 이번 정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스스로 칼을 들기엔 위험하고, 경찰은 미덥잖고 공수처는 역량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초유의 3대 특검을 가동했고, 상설특검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검찰이 특검이라는 분장을 하고, 다시 무대의 중심에 선 셈이다. 대검 중수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과 내란특검의 조은석 특별검사는 본질적으로 같은 검사다. 윤 전 대통령을 잡기 위해 또 다른 ‘칼’을 쓰는 이재명정부가 칼을 아예 없애버릴 수 있을까.
이성규 사회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