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목회자·사모들 ‘함께하는 삶’으로 서로를 돌보다

입력 2025-07-01 03:05
김기중 목사와 아내 이주순 사모가 최근 충남 서천군 화양면에 자리 잡은 ‘옹기종기 공동체’의 정자에 앉아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등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 있는 농어촌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이 자신의 은퇴 이후를 준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상태로 사역을 마치면 생활의 공백, 관계 단절, 심리적 외로움에 직면한다. 시골의 외로운 어르신 성도를 돌보던 목회자들이지만, 정작 자신을 돌볼 길을 찾는 덴 어려움을 겪는다.

예배당의 불이 꺼지고, 강단을 떠난 이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안락한 휴식이 아니라 외로움과 생계의 무게일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고민을 하는 건 혼자가 아니다. 서로를 돌보는 일상으로 서로의 고민에 응답하고, 주위 마을까지 돌보는 공동체가 있다.

농촌 속 작은 기적, 옹기종기

충남 서천군 화양면. 70대 이상 어르신 18가구가 모여 사는 한적한 시골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언덕 한편을 따라 늘어선 종려나무와 야자수, 자줏빛 패랭이꽃이 반긴다. 언덕 중앙에 자리 잡은 아름드리 정자는 이 정취에 따스함을 더한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농어촌 교회 목회자와 사모 등 8가정이 모여 신앙과 삶, 노동과 공동체를 함께 일구는 특별한 공간, ‘일터공동체 옹기종기’다.

김기중(한국농어촌선교단체협의회장) 목사는 올해로 농어촌 선교의 길을 걸은 지 44년째다. 그는 2022년 아내 이주순 사모와 함께 경기도 양지의 자택을 팔아 재정을 마련해 충남 서천군의 들판과 산자락 3만3000㎡(1만 평)의 땅을 샀다. 뜻을 함께하는 전국의 목사님들이 찾아와 함께 삽질하고 나무를 심고 식재 작업도 거들었다. 그 땅에 예배당 ‘산들강의 집’과 사택, 해썹(HACCP) 인증을 받은 식품 공동작업장, 게스트하우스 3동을 지었다.

설교한 대로 사는 삶, 회복으로의 여정

옹기종기의 목적은 단순한 공동생활이 아니다. 최근 만난 김 목사는 “설교한 대로 살고 싶었다”고 했다. 평생 강단에서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은퇴 후의 삶 속에서도 붙들고 실천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은퇴 후 옹기종기 인근 지역에 거처를 마련한 목회자들과 주 3~4회 만나며 함께 걷고, 자전거를 타고, 예배하고, 김장을 하고, 일을 하며 ‘삶으로 설교하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사모는 공동체 안에서 사모들과의 교제가 얼마나 깊은 위로가 되는지 소개했다. “농어촌 목회를 해오면서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쌓아뒀던 얘기들을 이곳에선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어요.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얻게 되는 게 크지요.”

40여년간 병원에서 행정업무 담당자로 근무해 온 이 사모는 “일상에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큰 기쁨이고, 퇴직 후에도 새로운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지역의 정성과 손맛이 담긴 식탁
지난해 11월 옹기종기 식품 공동작업장에서 사모들이 김장 김치를 담는 모습.

옹기종기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신선한 재료를 활용한 음식이 만들어진다. 의성 지역 목회자가 공급하는 고춧가루와 마늘, 진안에서 온 배추와 무, 신안 증도의 천일염, 서천의 새우젓, 해남 어불도 김과 건어물에 청국장, 반건조 생선까지 각 지역 특산물이 옹기종기 모인다. 여기에 평생 농어촌목회 현장을 지키며 다져온 사모들의 손맛이 더해진다. 김제 금강교회(김창수 목사)의 전금호 사모는 오이소박이와 멸치볶음을, 도장교회(임성재 목사) 이점숙 사모는 총괄 셰프로 소머리국밥을 담당하고 있다.

김장철이면 목회자와 사모들이 꼬박 3일에 걸쳐 김치 800~1000포기를 손수 만들고 주문서가 접수된 전국 곳곳으로 발송한다. 자정까지 배추를 절이고, 눈물 흘리며 마늘과 생강을 까고, 온종일 서서 배춧속을 넣는 모습엔 ‘함께 사는 삶’의 본질이 담겨있다. 모든 노동의 중심에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삶’이라는 철학이 있다.

마을과 함께 걷는 공동체
새롭게 조성 중인 숲길에서 내려다본 옹기종기 공동체 전경.

마을을 돌봐왔던 목회자들의 공동체는 그 자체로 지역을 돌본다.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나무를 심고, 음식을 나눈다. 축제와 행사 때마다 주민들을 초대해 함께 예배하고 음악을 즐긴다. 이웃과의 나눔이 공동체의 경계를 허물고, 신앙이 일상의 기쁨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이들의 연대는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

은퇴자들의 쉼터에 그치지 않고 은퇴 이후에도 신앙으로 살아가는 여정을 나누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은퇴 목회자의 삶 전체를 보살피는 새로운 모델들이 전국 곳곳에 세워지길 바란다”며 “옹기종기보다 더 나은 공동체가 생겨나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이어 “단지 경제적 해결책이 아닌, 신앙의 토대를 유지하며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가 더 많이 세워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누군가는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내가 하겠다’는 결심 하나로 집을 팔고 공동체를 세웠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땀 흘리며 또 다른 은퇴 목회자의 노년을 섬기는 곳. 김 목사는 옹기종기를 이렇게 말한다.

그는 최근 옹기종기 뒷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부쩍 길어졌다. 지역 내 산림조합에서 진행하는 숲 가꾸기 사업에 선정돼 주민들을 위한 숲길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숲길을 따라 주기도문길, 맨발길, 팔복길을 만들 예정이에요. 올해 안에 마무리하면 이곳 찾는 이들이 마음도 영성도 회복할 숲이 생기겠지요.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도 신이 납니다. 하하.”

서천=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