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없는 ‘기성용 더비’에 기성용 응원가

입력 2025-06-30 01:15
FC 서울 팬들이 29일 FC서울과 포항 스틸러스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기성용 이적을 결정한 구단과 김기동 감독을 비난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내건 채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동 나가.”

29일 FC서울과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연신 야유가 쏟아졌다. 서울의 레전드 기성용이 포항으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첫 경기서 공교롭게 만난 두 팀이다. 서울 팬들은 김기동 감독과 구단을 향해 항의하는 표시로 응원 보이콧을 결정했다.

서울은 이날 2025 K리그1 21라운드 포항과의 맞대결에서 4대 1로 대승을 거뒀다. 김 감독이 경기 전 “경기 결과로 보여드리겠다”고 말한 각오를 지키려는 듯 서울은 경기 내내 강하게 몰아쳤다. 올 시즌 첫 3골 차 이상 승리이자, 홈에서 3개월 만에 거둔 승리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경기 전반 16분, 제시 린가드가 선제골을 터트렸다. 선수들은 크게 기뻐하기보다 서로 등을 다독이는 모습이었다. 이후 루카스와 둑스, 클리말라가 잇따라 골망을 흔들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포항은 전반 28분 중원의 핵 오베르단의 퇴장으로 빠진 수적 열세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경기 시작 전부터 팬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경기장 바깥에서는 ‘구단 장례식’ 콘셉트의 규탄 집회까지 열렸다. 응원석에는 ‘헌신의 끝은 예우 아닌 숙청’ ‘기를 쓰고 선수 동내는 구단’ ‘굴러온 돌이 없앤 우리의 기댈 곳’ ‘뼈대 없는 GS축구단’ 등 항의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경기장에 울려 퍼진 건 “서울에 돌아온 기성용, 끝까지 함께하자”는 기성용 응원가였다. 결국 경기가 끝난 뒤 굳은 표정의 기성용이 직접 그라운드에 올라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긴 침묵 끝에 입을 뗀 기성용은 “지난 10년 동안 너무나도 행복했다”며 “이런 모습으로 떠난다는 게 죄송하다. 나이가 들어감으로써 기량이 많이 부족해지는 게 사실이고 언젠가는 해야 할 이별이 조금 더 빨리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팬들을 향해 “지금 상황이 전부 옳을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확실한 건 서울에 대한 제 진심과 믿음은 굳건하다는 것이다. 이 믿음이 선수단에 잘 전달되게 하고, 팬들의 웃음을 되찾아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